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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학과 대학원 신년하례식과 신입생 OT에 갔다. 며칠 전 고사장에서 신년하례식 알림 전화를 받고 엉겁결에 일단 안 간다고 하고 끊었었다. 시험 끝나고 과사에 연락해 일정을 다시 확인했다.

동원관 소담마루에서 신입생들이 자기 소개를 하고, 이번에 박사 졸업하는 분들이 인사를 한 다음 모두 함께 식사를 했다. 석사과정 신입생은 모두 왔더라. 법 계속 하지 왜 대학원 오냐는 말을 두 번 더 들었다.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스친 인연인 선희 님을 만났는데, 굉장히 귀여운 분이셨다. [어둠의 속도]를 읽고 있다고 하셔서 기뻤다.

신입생 OT에서 학사일정을 들으며 설레는 한편, 참 갈 길 까마득하구나, 싶어 마음이 무거웠다. 지쳐서 귀가했다. 집에서 한숨 돌린 후 다음 동네 미용실에 가서 일 년 넘게 기른 앞머리를 싹둑 자르고 퍼머를 했다. 미용실에서 휴대폰을 가지고 놀다가 희망법 소식(http://hopeandlaw.org/)을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잘 생각하고 서둘러 결정해야 할 때인데, 솔직히 조금 더, 한 달 정도만이라도 푹 쉬고 싶다. 움직일 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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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aptJay


2012년 1월 3일 화요일부터 1월 7일 토요일까지 시험을 쳤다.




대학원을 삼 년 다녔으니 초 세 개. 이제 하루이틀 쉬고 바로 다음 시험, 발표, 보고서, 과제 등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니 기분이 이상하다. 몹시 피곤했지만, 어쩐지 잠이 오지 않아 새벽 두 시가 지나도록 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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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aptJay
크리스마스 자정에는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오늘 저녁에는 동진님이 '로스트포크'를 만들어 주셨다.


주말 내내 동진님 덕분에 일찍 일어나고, 잘 먹고, 기운 내서 공부도 제대로 해서 기분이 좋았다. 동진님이 집에 계시면 행복하고 배도 부르고 집도 깨끗해진다. 그래서 내 기분이 좋아지면 동진님 기분도 좋아지고 그러면 나는 더 기분이 좋아져서 뭐든 열심히 한다. 그러고 나면 뿌듯해서 기분이 좋아지고, 내 기분이 더 좋아지면 동진님 기분도 더 좋아지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그리고 뽀뽀 시험이 얼마 안 남았다. 마지막 주이니 힘을 내야지!

미리 쓰는 2012년의 계획: 들어오는 원고 청탁을 거절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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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aptJay
'지금'이 지나가기 전에 쓴다.

어제 행정법 2 기말고사를 쳤다. 화요일에 유가증권법 기말고사를 보면 법학전문대학원 마지막 학기가 끝난다. 아직 졸업하지 않았지만, 졸업하기 전에 일기를 써 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지난주부터 쓰고 싶었으나 시간이 없었는데, 밤낮이 바뀐 상태가 한 바퀴 돌아 어제 20시에 스르륵 잠들어 오늘 새벽 4시에 깨면서 드디어 블로그를 잡을 짬이 났다. 어제는 07시에 취침, 13시에 기상했었다.

얼마 전에 성적증명서를 뽑아 보았다. 예상보다 위인지 아래인지 애매한 하위권이었다. 입학정원 120명, 첫 학기 재학 114명(?)으로 시작한 우리 학년의 분모는 이제 100 정도로 줄어 있다. 성적표를 보며 '학점 평생 간다던데, 좀 잘 할 걸'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러나 찬찬히 돌이켜 보면 버티는 것 이상을 할 수 없었고, 버텼으니 되었다. 기록을 남기지 못한 일들이 많다. 그에 대해서도 '메모라도 남겨둘 걸' 이라는 생각을 지금은 한다. 그러나 그 때는 아무 것도 쓸 수 없었다. 모두도서관 개관기 활동이나 센터 초반 활동을 잘 정리해 놓지 않은 것은 아쉽다. 고향 집에 펌프를 보낼 방법을 찾던 S씨. 아기, 낳아 보지 않으면 엄마 사랑 몰라요, 이제 알아요, 하고 잡담을 하다 눈물을 보이던 A씨. 기껏 번 돈을 고향에 보내면 친척 오빠가 닭싸움에 써 버릴지 모른다던 걱정. 몇 달 사이에 아득해진 많은 이야기들. 잊어버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잊어버린 이야기들. 잊어버리고 싶었지만 막상 잊어버리니 반복할까 두려운 시행착오들.

앞으로 더 많은 일을 제대로 기억하면서 하면 될 터다, 라고 써 두자.

긴 삼 년 이었지만,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신기한 일이다. 기록이 없어 기억도 사라졌는지, 감정의 뭉텅이, 중간중간 만났던 사람들의 흔적, 왠지 가슴에 박힌 말들만 남았다. 공부한 내용이 남아 있어야 시험을 칠 텐데, 하고 같은 처지인 수험생한테만 조금 우스울 것 같은 농담을 떠올리고 피식 웃는다.

힘들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상대평가 경쟁체제에 단일한 가치평가를 내재한 보수적인 학교가 가장 힘들었고, 남편을 사랑하지만 결혼으로 맺어진 가족관계도 쉽지 않았다. 더 쉬워지지도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무엇이 힘들었는지 벌써 잘 설명할 수 없다. 잊었기 때문만은 아니고, 그만큼 내가 변했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예전에는 약에 쓰려고 찾아도 없던 열등감이 생겼고, 원래 열등감 분만큼 추가로 갖고 있던 오만함은 더 선명하고 날카롭고 속되어졌다.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석박통합과정에 최종합격했다. 면접에서 제대로 못 한 것 같아 마지막까지 마음을 졸였다. 주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보답을 기대하지 않는 호의가 낯설어진 와중이었다. 처음에는 고마움에 숨이 막혔고 나중에는 참으로 오랜만에 긴 심호흡을 할 수 있었다. '이것도 실천이다'라고 부끄럽지 않게 말할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다. 그게 무엇인지는 일단 한 숨 돌리고 천천히 생각해 보려고 한다. 너무 오래, 시험에 쫓기며 살았다.

로스쿨에 들어올 때도 하고 싶은 일이 많이 있었다. 멋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가까이 있던 사람들의 멋진 면을 새로이 발견하기도 했다. 자신의 삶을 던지는 방식에 대해, 몸으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을 판단하는 능력에 대해, 사회를 바꾸는 제도의 힘에 대해 생각했다. 타인을 위로하는 힘, 상처를 아물게 하는 말, 느리고 변함없는 사람들의 소중함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가 아주 많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서울시의회에서는 서울학생인권조례 원안통과 점거농성이 진행중이다. 지인들이 그 곳에 있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 있고, 그곳에 없다. 앎이 곧 실천이라고는 여전히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이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볼 수 있게 된, 지식과 실천 사이의 생각보다 희미한 경계가 있다. 그래서 공부를 더 해보기로 결심했다. '로스쿨생'이었기 때문에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있다. 할 수 있는 일도 있을 것이다. 후회하지 않는다.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일들을 모두 잊고 싶지는 않다. 잘 기억하고 있어야 남에게 같은 칼을 휘두르지 않을 수 있다. 몇 년이 지나도, 돌이켜 보니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다고 말하기보다는, 내가 힘들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그렇게 힘들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끝까지 힘을 냈으니까 너도 힘을 내라는 말보다, 그렇게 있는 힘을 다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때로는 살기 위해 물러서거나 포기해도 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 나를 위로했던 말을 기억하고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지난 삼 년을 나며 나는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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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aptJ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