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일 목요일

일상 2011.09.01 18:55 |

8월 8일에는 철 들고 처음으로 한의원에 갔다.


8월 9일에 동대입구역 근처에서 프레시안 북스 편집위원 분들 및 기자분들과 만나 냉면을 먹고 차를 마셨다. 이후 민변 로스쿨회원모임 뒷풀이에도 갔다. 기운이 날까 해서 한 나들이였는데 기운은 전혀 나지 않았고, 개운치 않은 회의감만 끌어안고 돌아왔다. 그럼에도 사람을 만났다는 점은 좋았으며, 오가는 길에 읽은 [표백]이 정말로 강렬한 이야기라 만족스러웠다. 밤에는 악몽을 꿨다.



8월 11일에 시아주버님 가족이 출국했다.


8월 12일에 장강명 님, 동진 님과 아벡누에서 점심을 먹었다. 나의 글은 너무 착한데, 심사위원들은 못된 글을 좋아한다는 조언을 들었다. 못된 글은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지만 몇 년 만에 강명님을 만나 반가웠다. 대화는 흥미로웠고, 헤어지고 나서도 이것저것 생각할 수 있었다. 내게는 힘든 장소가 강명님에게는 멋과 낭만이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이 왠지 우스꽝스러웠다. "서울대보다 훨씬 낫지 않아요?" 라는 말에 웃음이 나서, 며칠 전에 강의실에서 본 커다란 일본 바퀴벌레 이야기를 했다.


8월 14일부터 8월 16일까지 동진님과 만남 10주년 기념 휴가 삼아 송도를 다녀왔다. 송도는 모델하우스의 모형 같은 도시였다. 효율성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번쩍이는 유리로 된 건물들과 한산한 도로, 녹색성장풍 인공적인 공원, 외국 국기, 영어 병기 표지판 등이 있었다. 야경은 [블레이드 러너]의 한 장면 같았다. 독특한 공간이었다. 서울을 잠시 떠나 동진님과 조용히 쉬니 굉장히 행복하고 평화로웠다.



8월 18일에 문지문화원 수강생이셨던 해울 님과 뒤빵에서 점심을 먹었다. 해울 님이 피험자로 참여하신 공감각인 연구 보고서를 보여 주셨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이러면 안 되는 건가 하고 생각하면서도 내 이름이 해울 님에게 무슨 색으로 보이는지 묻고야 말았다. 연한 파스텔톤이라고 한다.

8월 20일 토요일에는 텝스를 쳤다. 급히 신청해서 덜렁덜렁 가서 보았는데 어휘가 너무 어려워서 귀가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핫팬츠를 입고 냉방이 센 교실에 두 시간 반 앉아 있었더니 냉방병 증세가 와서 걱정이 되었다. 텝스를 박멸하자며 분노해댔으나, 30일에 나온 점수가 2년 전과 비슷해서 대충 만족했고, 매우 안도했다.

8월 21일에 이다 님, 명훈 님과 홍대입구 카주라호에서 만나 이다 님네 피망 및 아삭이 판매촉진을 위한 피망 단편선 출간을 논의했다. 명훈 님은 이미 피망 단편을 다 쓰셨더라. 농사가 10월이면 거의 끝나니 내년 6월 피망 판매에 맞춰 준비하기로 했다. 즐거웠지만, 어제에 이어 냉방 때문에 힘들었다.



8월 24일 오후에 민영 고모와 명아가 집에 놀러 왔다. 삼 년 반 만에 귀국한 명아가 반가웠다. 그다지 달라진 데가 없었고, 예전보다 안정된 느낌이었다. 보스톤에서는 깻잎을 구해 먹기가 매우 힘든데, 한국에 와 보니 아버지(내게는 작은 할아버지)의 주말 농장에 깻잎이 가득했다고 한다. 명아는 너무나 황홀한 표정으로 "깻잎 천국이었어!"라고 외쳤다. 선물로 웃는 얼굴 얼음틀과 봉투를 주기에 당연히 편지라고 생각하고 받았는데, 나중에 열어 보니 편지가 아니라 늦은 축의금인 듯한 달러라서 당황했다.

8월 25일 점심은 라키난 님, 인수 오빠와 연희동 중식집 향미에서 먹었다. 소룡포가 먹고 싶다고 했더니 인수 오빠가 맛있는 집을 찾아 주었다. 선물도 받았다.



8월 26일에는 아우님과 처음으로 경락맛사지라는 것을 받으러 갔다. 8월 중순부터 냉방병 내지 여름감기라고 의심하던 증상이 우리 가족의 강력한 우성유전인 알러지 비염 증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8월 27일 오후에는 여의도에서 전션을 잠깐 만나 차를 한 잔 마셨다. 나이가 들수록 분명해지는 취향과 고집, 깊은 관계 형성의 어려움, 이미 들어버린 말이 남기는 아물지 않는 상처에 관해 말했다. 전션은 [종로의 기적] GV에서 "여러분이 커밍아웃을 했으면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이런 영화를 보았다고, 어떻게 생각했다고, 주위에 말해 달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저녁에는 동진님과 고기를 먹었다.

8월 30일 낮에는 이명현 박사님의 작업실에 가서 이 박사님, 상준 님, 만화평론가 백정숙 님을 만났다. 즐겁고 새로운 이야기가 많았고, 생각할 다음 일이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 이 박사님의 작업실은 무척 인상적인 공간이었다. 재미있어 보이는 책이 엄청 많았다! 나도 나이가 들면 귀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다.

밤에는 E지에 원고를 보냈다.

8월 31일은 개강 전날이었다. 어머니와 세브란스 병원에 갔다가 현대백화점 지하에서 덮밥을 포장해 돌아와 허겁지겁 먹었다. 공간 자체에 대한 공포심이나 거부감에 대해 생각했다. 언젠가 글로 쓸 수 있다면 좋겠다. 요즈음 내가 쓰거나 뱉는 말은 대부분 언어가 아니라 고함 내지 신음 같은 것이다. 날것인 고통에서 나오는 신음에는 강한 힘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 힘을 갖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9월 1일 오늘은 개강을 했다. 전날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고 세 시간 정도 자다가 새벽에 악몽을 꿔서 깼다. 악몽은 학교와 상관 없는 내용이었다. 첫날이라 수업을 다 하지 않아, 점심 때 동교동 삼거리로 가서 아스 님을 잠깐 뵙고 함께 식사를 했다. 책 드리고 차 한 잔 마시고 일어날 생각이었는데, 막상 음식을 보니 식욕이 나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시간이 금세 갔다.



학교로 돌아와 수업을 마저 듣다가, 비둘기파는 모두 멸종하리라는 강한 확신을 갖고 조퇴했다. 귀가길에 택시 기사님이 학생이냐고, 전공이 뭐냐고 물었다. 그냥 철학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법학이라고 해서 좋았던 적이 없다. 기사님이 IMF때, 무슨 연구소를 운영하던 총무가 최고경영자과정 동문들이 모은 기금 일억 오천 만원을 들고 사라졌던 일을 이야기했다. 동문들이 회장에게 물어내라고 하자 회장은 도의적 책임은 질 수 있어도 돈은 낼 수 없다고 해서 난장판이 되었다고 한다. 그 때는, 아이엠에프 때는 다 그랬어요, 동문회고 뭐고 다 망가졌어. 지금 같으면 뭔가 안전 장치를 했겠지, 그때는 그런 것도 없었어. 회장이 한 오천 내고, 우리도 최소한 천 오백, 천 오백은 냈고 부회장은 삼천인가 냈지. 그의 목소리에는 분기가 없었다. 개인택시가 아니라 회사택시였다.

집에 와서 동진님이 며칠 전에 가져온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퍼 먹고 어제 어머니가 손에 들려 주신 에그타르트도 하나 먹었다. 그리고 밀린 일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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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aptj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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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9.07 12:28 Address Modify/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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