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악화를 막으려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명절은 상처만 남기고 지나갔다. 친정에는 가지 않았다. 설 다음날에는 형님의 전화도 받았는데, 상황 자체는 이것이 바로 옥상옥이구나 싶어 숨이 막혔으나 형님 말씀이 옳았기에 죄송했고, 차분히 사과했다. 같은 시부모의 며느리로 십 몇 년을 먼저 사신 분의 이런저런 말씀으로부터 위로를 많이 받았다. 이제 마흔을 갓 넘긴 형님이 나의 어머니와 비슷한 말씀을 많이 하셔서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먼저 마음을 열라든가, 생판 남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에는 원래 여러 해가 걸리기 나름이라든가 하는 얘기도 하셨는데, 당장 실천할 기운이나 의욕은 없지만 좋은 말씀이다 싶었고, 의지가 되었다. 

형님이 제시한 해결책(?)이 신앙에 의지하고 아이를 가지는 것이라는 점은 슬펐다. 신은 믿겠다고 이를 악문다고 믿어지는 존재가 아니고, 나는 시월드와 아이를 동시에 짊어질 수 없다. 결혼 전에는 아이를 꼭 갖고 싶었다. 이왕 여자로 태어났으니, 내 몸과 삶으로 할 수 있는 경험을 모두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지금도 임신과 출산은 하고 싶고, 무엇보다도 동진님의 아이를 갖고 싶다. 이것은 결혼하기 전에는 나에게 있는 줄도 몰랐던 신기한 욕구이다. 그러나 시부모와 시부모의 아들 가진 유세의 존재증명이나 다름없는 명절과 왠지 당신 아들이 아니라 나까지 찾는 각종 '날'들과 며칠이 지나도 제 손으로 걷어넣지 않는 남편의 옷가지 따위로 인한 생활의 피로감이 너무나 크고 고통스럽다. 이 이상의 상실과 소진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나는 눈빛만 보아도 전해지는 마음이 있든 없든, 가족이든 아니든, 가장 중요한 말은 제대로 눈을 보고 또박또박, 분명하게 하는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백 마디 말보다 행동이라고 하지만, 말이 곧 행동이 되는, 소리내어 말하는 일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형님은 누구에게나 건드리면 참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하셨다. 인간관계에서 나의 역린은 바로 이것인 듯 하다.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지 말고, 나를 똑바로 보고 말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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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aptj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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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2.01 08:59 Address Modify/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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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2.02.01 19:26 Address Modify/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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