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전날이라 왠지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

대학원 동기 점심 모임이 있어 학교에 갔다. 동원관 건물 1층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에서 다함께 피자, 파스타, 리조또를 나누어 먹었다. 많이 웃었다. 석사과정인 동기들 중에는 올해 프로포절 심사를 보았거나 볼 이들도 있다. 졸업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아직 수료학점을 반도 채우지 못한 내게는 먼 이야기이지만. 다들 졸업하고 나면 쓸쓸할 것 같다.

우진, 우영과 연구실이 있는 550동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다 나왔다. 괜히 많이 걸었다. 학교 안도 빙빙 돌고, 버스를 타고 신림동에 내려 문구점에도 갔다. 며칠 전부터 벼르던 마스킹액을 샀다. 예전 광장문구 건물이 알파문구가 되어 있었는데, 물건 배치나 판매하는 상품은 비슷했다. 마스킹액에 쓸 붓도 사고, 혹시 효과가 있을까 하여 3M에서 나온 접착제 제거 스프레이도 샀다. 

그리고 영상자료원에 [대부 2]를 보러 갔다. 영상자료원은 DMC 미디어시티 역에서 꽤 가까웠다. 예전에 파인로 님이 우리집에서 무척 가깝다며 버스 노선을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지하철을 타고 30분이면 충분히 가겠더라. 앞으로 프로그램을 유심히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후 3시 정도밖에 되지 않아 일단 발권을 하고 또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걸었다. 공차에서 큰 사이즈 버블티를 하나 테이크아웃해 영상자료원 지하 1층 테이블에 앉아 마셨다. 김주영 님의 단편집 [보름달 징크스]를 읽었다. 예상보다 옛날 (1990년대 말 ~ 2000년대 초반) 작품들을 모은 책이었다. 예전에 읽은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단편들도 있었다. 신작은 없었지만 좋은 책이었고,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책을 다 읽고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휴대폰 배터리도 바닥나 멍하니 앉아 있다가 영화를 보러 들어갔다.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낯익은 얼굴이 있을까 하여 둘러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영화를 많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로버트 드 니로가 정말로 멋졌다. [대부 2]가 나에게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남자로부터도 강한 성적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었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 일이다. 그 느낌이 벼락같이 찾아왔던 장면을 다시 보았다. 여전히 강렬하였으나 그런 식으로 강렬하지는 않았다. 어떤 지나간 성장들, 어떤 끝난 이야기들, 어떤 희미해진 혼란들. 삶이 곧 이야기라면 내가 살아 있는 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이야기들이, 결국은 끝이 날 뿐 아니라 언젠가는 잊혀진다. "옛날"이라는 말로 묶인 커다랗고 희미한 덩어리만 남는다.

아련한 감상에 젖어 걷다가 길을 잃었다. 휴대폰이 없으니 내 위치를 알 수 없어, 내가 길을 잃어버린 줄 깨닫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우여곡절 끝에 DMC 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보니, 버스로 다섯 정거장이 넘는 거리를 걸었더라. 삼십 분이면 되겠다 싶었던 거리를 한 시간 넘게 돌아 집에 돌아왔다. 그래도, 돌아왔다. 

좋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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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aptj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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