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4일 일요일

일상 2015.01.04 06:53 |

한국의 평범한 며느리의 본분에 충실하여(?) 가끔 시댁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궁시렁거리지만, 사실 나는 시부모님을 무척 존경한다. 시부모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존경하는 부분들이 있다. 아버님을 존경하는 이유도 있고 어머님을 존경하는 이유도 있다. 남편과 달리 내가 선택한 가족이 아니지만, 다행스럽게도 두 분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유를 너댓 가지 정도는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소설가인 아버님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선배 문인을 마주할 때의 존경심이 있고, 통상 민감하고 날 선 데가 있기 마련인 글 쓰는 사람과 평생을 살아오신 것만으로도 이미 어머님은 존경스럽다(음, 같은 이유에서 내 남편도 존경한다).


그러나 작가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오늘은 내가 어머님을 존경하는 이유 중 종교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아 민감한 주제!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안 믿어져서 안 믿는다. 별다른 종교색이 없는 집안에서 자랐고, 영적 체험을 한 적도 종교적 사회집단에 속한 적도 없다. 신이나 윤회 같은 초월적 존재 내지 현상을 믿는 이들을 여전히 가끔 신기하게 생각하긴 하지만, 존중하고, 가끔은 그러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용기들에 경외감을 느끼고 그러한 믿음이 필요한 상황을 연민하기도 한다. 그 정도이다.


나를 제외한(?) 시댁 식구들은 첫째 며느리인 형님까지 포함하여 모두 개신교인이다. 모두 초대형 교회를 오래 다녔고, 사회생활의 중심도 교회에 있다. 남편은 모태신앙이라면 모태신앙이나, 본인이 종교적 체험을 하였고 신앙을 선택했고 신을 믿는다고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남편이 친구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다 교회 친구이고, 대학부 친구 중 삼분의 일 이상은 목사님이다. 시아주버님, 즉 남편의 형은 형님(남편의 형수님)이 다니는 모 초대형교회에서 결혼을 했다. 당시 시부모님은 무척 아쉬웠지만 둘째인 남편이 소속 교회에서 결혼을 하면 될 테니 하고 양보(?)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나...둘째아들이 다른 교회를 다니는 아가씨도 아닌 철학과에서 니체의 반그리스도론으로 졸업논문 쓰는 무신론자를 만나 버렸어...


결혼 이야기가 오갈 때, 시어머님과 나의 어머니가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사실 나는 사랑놀음에 빠져 결혼준비 때 뭘 어떻게 했는지 거의 기억도 안 난다). 예비 사돈들끼리 이런저런 실무(?)를 조율하는 자리였던 모양이다. 어쨌든 그때, 나의 어머니는 우리 소연이는 결코 교회에 다닐 아이가 아니고 싫은 일을 참고 할 수 있는 아이도 아니니 결혼 후에 시댁에서 소연이에게 같이 교회에 다니자는 말씀만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한다. 뒤에 들은 말이니 정확히는 모르지만 어쨌든 교회에 억지로 데리고 가지 말아 달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시어머님은 고민을 하시다가, 결단한 얼굴로 알겠다, 약속한다, 라고 하셨다 한다.


그리고 결혼 6년차가 되는 지금까지 정말로 시부모님은 나에게 단 한 번도 교회에 가라거나 교회가 좋다거나 같이 가 보자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 결혼하고 사 년 정도 지나서인가, 내가 자발적으로 남편의 예배에 따라가 본 적은 있다(그리고 예상대로;;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자발적 시도였고, 나는 내 안의 신의 부재를 확인하고 돌아왔다). 


나는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한국에서 교회, 특히 시부모님이 다니는 것과 같은 대형 교회는 총체로서의 신앙이기 이전에  하나의 독립된 사회이고 어떤 내부의 룰이 있다는 점은 막연히 알고 있다. 수십 년을 충실히 교회에 다녔는데 결국 자식을 그 교회에서 결혼시키지 않고, 며느리를 전도하지 못한(?) 시부모님의 자리가 편치만은 않으리라고도 생각한다. 신앙이 있는 사람이 그 위대함(?)을 모르는 사람, 그것도 반 세기쯤 나이차이가 나고 사회적으로도 고부간이라는 권력관계가 명확한 아랫사람에게 "이게 좋은 거니 같이 하자"라고 말 한 번 안 꺼내기란 정말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어머님은 지금까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셨고 지키셨다. 시댁에선 나 외에는 모두 교회를 다니니 시댁 가족 모임은 예배시간이 끝난 후 교회 근처에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근처 온 김에 교회 한 번 들르라는 말씀을 하신 적조차 없다. 


나는 이 점에서 어머님의 인격을 정말로 존경한다. 약속을 했으니 지키겠다는 다짐으로 말을 삼키신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칠십 년 넘게 사신 어르신이다. 이제 내 나이에는 내키는 대로 해도 그만이라 생각하실 연세이고, 사실 그러셨어도 나는 기분이 나빴을 뿐이지 어찌할 수 없었으리라. 그런다고 내가 교회에 가지는 않았겠지만 어머님 입을 막을 수도 없다. 그래도 같이 가자, 말씀을 않으신 어머님의 그 곧은 면을 좋아한다. 내가 나이 칠십이 넘어 어머님처럼 본인의 말을 지킬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런 어머님께서 교회 실버부에서 수필집을 냈으니 읽어 보라며 책을 한 권 주셨다. 결혼생활, 인생 회고, 자식 자랑, 손주 얘기 등 주제별로 교인들이 쓴 글을 모은 자가출판물이다. 어머님은 글을 잘 쓰신다. 내 어머님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실로 단연 돋보이는 솜씨이다. 조금 더 늦게 태어나셨다면 작가가 아니라도 관련 일을 계속 하셨을 텐데 아쉬운 재능이다, 하고 어쩐지 며느리가 아니라 제3자의 시선으로 읽는데, 마지막 글로 가족에게 쓴 예비 유언장이 나왔다. 둘째며느리에게, 라는 소목차 밑에는, 남편 홀로 외로이 교회 다니게 하지 말고 동행하거라, 하고 쓰여 있었다.


약속대로 말씀은 안 하시되, 유언장이라는 치트키를 땡겨 글로 쓰시다니! 푸헝헝 웃으며 남편에게 "마지막 글 봤어요?" 하고 물었더니 앞 말을 생략했지만 알아들은 듯 헛헛 마주 웃으며 "응, 봤어요." 한다.


나는 남편과 어머님을 통하여 개신교인들을 더 존경하게 되었고, 종교에 조금 더 유연해졌다. 그리고 언젠가, 이왕이면 가능한 한 먼 미래에, 어머님께서 땡겨 쓰신 이 반칙같은 유언장을 떠올리며 우는 날이 올지도 모르고, 여전히 신을 믿지 않지만 어머님을 생각하며 일 년에 한두 번 쯤은 교회에 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지금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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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마지막 일정. 씨앤앰 통신비정규직 노동자 고공농성이 끝난 날. 승리를 축하하고 연대에 감사하고 남아있는 투쟁현장들을 하나씩 불러보고, 울고 웃으며 두 분이 가족과, 땅과 살아 다시 만나시는 모습을 보며 올해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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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6일 금요일 22시 경


동진님이 운동을 다녀와 이 시간에 말했다.

동진님: 큰일났어요. 내일 아침에 먹을 빵이 없는데 (<-이건 퇴근길에 들었음) ... 계란도 없어요. 
나: 뭐라고요?! 아침밥이 없잖아요?! 동진님, 요새 너무 방만하게 사는 거 아니에요? (목소리를 깔고 추궁한다) 
동진님: (순순히) 맞아요. 방만했어요. 
나: ㅋㅋㅋㅋㅋ수긍하시다니ㅋㅋㅋㅋ
동진님: 아이엠! 방만! (영문을 알 수 없는 포즈를 취함)


2014년 12월 26일 금요일


동진님: 우리 꼬옥꼬옥(포옹) 할까?
나: 음~음음~
동진님: 좋구나?
나: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요?
동진님: 제이님은 싫은 일에는 바로 확실하게 싫다고 하니까, 대답을 안 하는 건 좋으면서 할 말을 생각하고 있는 거야.


...이 남자, 내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


2014년 12월 27일 토요일


둘이 함께 나누어먹다보니,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카카오봄 현미바 초컬릿이 한 토막 남았다.

나: 동진님 드세요.
동진님: 고마워요. 제이님은 마음이 태평양같이 넓군요.
나: (불만스런 표정)
동진님: 왜요?
나: 태평양이라니 미묘하게 좁아요.

제일 좋아하는 초컬릿을 양보했는데! 어째서 지구나 우주가 아닌 거야?


2014년 12월 28일 일요일


나: 동진님~동진님은 제 어디가 그렇게 좋아요?
동진님: 엉덩이(즉답).
나: (당황)

나의 천재성과 유일무이함을 찬양할 줄 알았는데...!


2014년 12월 31일 수요일


동진님: 제이님이 제 삶의 목적이에요. 제이님이 꾸는 꿈이 제 꿈이에요. 
나: 전 페북에서 본 마카롱의 케이크를 꿈꾸고 있는데...
동진님: 저도요. 
나: ㅋㅋㅋㅋㅋㅋ
동진님: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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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aptj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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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학교 가서 패널 토론 하고 저녁에는 노동위 송년회. 겸손해지는 자리였다. 보고 따라갈 수 있는 선배님들이 계신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십 년 뒤, 이십 년 뒤의 나를 상상하고, 내 그릇을 돌아보고, 작게 뭉친 나를 오래 굴리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낮추고, 낮추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금씩 계속. 내년에는 지금 여기에서 아주 조금 더 나가 있기를. 조금 더 낮은 곳에서. 조금 더 용감하기를. 


2014년이 끝나간다는 실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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