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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11 2011년 3월 11일 목요일 : 나누리플러스 활동가 간담회
일기가 너무 밀려서 시간순으로 쓰기 어려워 일단 오늘부터 시간 날 때마다 거슬러 가려고 한다.

저녁에 위원회 회의와 나누리플러스 활동가 간담회에 갔다. 낮에는 최근 미국 대법원에서 나온 성소수자 가입을 불인정하는 개신교동아리에 대한 공립로스쿨의 공식동아리 인정거부 사건(CLS v. Martinez)의 판례를 정리했다. 80여쪽에 달하는 판례를 꼼꼼히 읽어 보니 꽤 흥미로웠다. 그러나 막상 회의에서는 제대로 전달을 못 한 것 같아 조금 속상했다. 천천히 잘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누리+(나누리플러스, http://www.aidsmove.net)는 HIV/AIDS 인권연대로, HIV/AIDS 감염인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연대체이다. 윤가브리엘, 정욜, 권미란, 님이 오셨다. 공감에서 실무수습을 하면서 내가 몸에 직접 관련되는 이슈, 특히 에이즈와 같은 질병에 대해 무지하고 편견이 많다고 느꼈기 때문에, 감염인과 같은 공간에 앉아 직접 이야기를 들을 기회인 이 간담회를 무척 기다렸다.

나누리+의 활동과 다국적제약회사의 횡포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로슈는 에이즈치료제 '푸제온'을 독점 공급하는 다국적제약회사로, 한국 환자 한 명당 일 년에 수천 만 원을 내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환자들 대부분에게는 당연히 이만한 지불능력이 없다. 정부가 보험약가로 1,800만원을 제안했지만, 로슈는 "의약품 공급은 구매능력이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 이라고 말하며 자신들이 정한 약가를 내지 않는(못하는) 한국의 환자들에는 이 약을 단 한 병도 주지 않았다.

결국 사 년 정도가 지나서야, 목숨이 위험해진 감염인들과 시민단체가 정부에 강제실시를 청구했다. 강제실시는 특허권을 특정한 요건 하에서 타인이 실행할 수 있도록 정부가 강제하는 것이다. 특허권은 긴급한 필요나 공공복리를 넘어서는 절대적인 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강제실시가 받아들여지면 환자들은 복제약을 공급받을 수 있다(강제실시는 독점제약회사의 약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특허권 때문에 지금은 환자들이 수입할 수 없는 같은 질병에 대한 다른 약을 수입할 수 있게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되자, 로슈가 갑자기 푸제온을 한시 무상 공급해버렸다. 제약회사가 약을 공짜로 주면 정부는 강제실시를 인정할 이유가 사라졌으니 청구를 기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당장 환자들은 한동안 약을 먹을 수 있지만, 로슈는 정부의 강제실시를 회피하고 독점약가를 마음대로 설정할 힘을 유지한다.

제약회사의 절대적인 특허권 수호는 빈국에 사는 에이즈나 조류독감 환자들이 약만 있으면 확실히 살 수 있는 상황에서도 목숨을 잃는 결과를 낳고 있다. 경쟁이 없으니 개발이 더디어져 결국은 같은 병에 대한 대안적 선택이 어려워진다는 지적도 있다. 푸제온 이전에는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을 만든 제약회사 노바티스가 보통 환자가 지불할 수 없는 높은 약가를 제시해 놓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아예 공급을 거부한 적이 있다고 한다.

오늘 간담회에 오신 윤가브리엘 님은 이 푸제온을 꼭 필요한 때 공급받지 못해 결국 실명을 했고, 다리도 마비되었으며, 말 그대로 '죽을 뻔 했다.'

자본이 생명에 우선하는 현실 앞에서 할 말이 없었다. 제약회사가 "그래서 우리는 돈 없는 동남아 국가에게는 약을 공급하지 않는다"고 태연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자본주의이고 그렇게 말해도 괜찮은 세상을 지탱하는 것이 법이라면, 나는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Posted by Captj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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