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센터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 대표님과 차를 마시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다. 지금까지 수업을 했던 학생 분들의 안부를 여쭙고,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거나 더 나빠진 상황을 들었다. 이제 나는 한국어 교사가 아니라 다른 역할을 하게 되리라. 선생님이라고 불리었지만 언제나 내가 더 많이 배웠다. 

저를 많이 이용하시라 몇 번이나 당부하고 센터를 나섰다. 이미 해가 한참 기울어 있었다.배움에 어디 끝이 있겠냐마는, '배우는 중'이라는 변명에는 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끝에 가까운 자리에 서서, 다른 이들이 자신의 삶으로 가르쳐 준 것들에 책임을 지자고, 이 만남들에 책임을 지자고, 현실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며 생각했다. 삼월인데도 바람이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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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님과 홍대 앞에서 오랜만에 뵈었다. [제니스 브레드]에 갔는데 문을 닫았더라. 그래서 [뒤빵]에 갔으나 연휴 다음날이라서인지 뒤빵도 휴일. 어찌할까 하다가 오랜만에 [Joey's Cafe]에 가서 스프를 먹었다. 여기 브로콜리 스프 맛있다.

미로 님 어머님이 사회복지를 전공하시는데, 지역의 결혼이주여성 지원 프로그램에서 참여관찰을 하셨단다. 그 과정에서 보고 겪었던 일들에 대해 들었다. 사회사업가들의 시혜적인 시선과 지역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진행되는 '보여주기식' 프로그램이 참여자들에게 남기는 상처에 가슴이 아팠다. 사회복지실천 전문가들조차도 '우리가 너희에게 이렇게까지 해 주는데'라고 생각하곤 한다.

미로 님의 태국 여행과 ICAAP 참가담도 들었다. 언어 때문에 의사소통이 어려운 경우가 있었다는 말에 놀랐다. 아직 한국은 태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HIV/AIDS 연대 경험이 많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ICAAP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대규모 HIV/AIDS 행사였다고. 또한 사람을 정말 안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귀가길에 카카오봄에 들러 핫초컬릿을 테이크아웃 하고, 초컬릿을 조금 샀다. 밤이 되니 무척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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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종강식 날이었다. 이번 학기 수업 사진을 모아 만든 동영상을 본 다음 돌아가며 소감을 발표했다. 기념 사진을 찍고 학생 분들께 수료증을 드렸다. 이번 학기 들어 함께하는 수업이 없어 뵙지 못했던 S씨와 두 딸, H씨를 오랜만에 만나 기뻤다. S씨는 외부 활동을 활발히 하시고 있어 보기 좋았다.


계절학기 수업 때문에 센터에 못 나간 사이 캄보디아에서 오신 W씨가 나를 그려 주셨더라. 화이트보드에 붙여 놓은 작품을 보고 무척 기뻤다. W씨는 뜨개질도 잘 하신다. 벌써 멋진 무늬가 들어간 목도리를 하나 완성하셨다.

종강식이 끝난 다음에는 대표님, 다른 선생님, 학생 분들이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누어 먹고 다함께 어울려 뜨개질을 했다. 뜨개질 열등생이라 무늬 넣기는 포기하고 겉뜨기로만 넥워머를 만들 생각인데, 이것도 한 번 방향을 바꿀 때마다 헷갈려서 지지부진하다. 하지만 학생 분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이 참 재미있다.

밤에는 에너지가 바닥나 힘없이 누워 있었다. 늦게 귀가한 동진님이 내 꼴을 보고 급히 새우덮밥을 만들어 주었다. 정말 맛있었다. 회사 일 때문에 날마다 야근 하느라 힘든 동진님에게 나까지 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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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센터 크리스마스 파티에 갔다. 필리핀 분들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많이 하고 싶어하셔서, 올해 한 번 해 보기로 했다. 어제 음악시간에 한국어 캐롤을 공부하고 트리를 장식했다.

오늘은 뜨개질을 하며(열풍!) 모두 모이기를 기다린 다음, 핸드벨을 흔들며 '고요한 밤 거룩한 밤'과 '징글벨'을 불렀다. 그리고 한 가지씩 준비해 온 선물을 사다리타기로 나누었다.


나도 J씨와 E씨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몇 주 전에 E씨가 J씨와 시장에 있는 화장품 가게에 선물을 사러 갔는데 좋은 물건이 무척 많았지만 모두 너무 비싸서 핸드크림밖에 못 샀다는 일기를 써 왔었다. 집에 와서 열어보니 역시나 핸드크림과 작은 화장품들이었다. 소중하게 써야지.


노래를 부르고 선물을 나눈 다음에는 쪽지에 2011년 소원을 썼다. 모두들 모국어로 여러 장 빽빽하게 쓰더라. 딸이 둘 있지만 아직 국적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JE씨에게 대표님이 "JE씨 소원 국적?" 했더니 국적이 아니라 아들이 갖고 싶다고 하더라. 소원 쪽지를 모아 소원주머니에 넣은 다음, 학생 분들이 집에서 만들어 온 필리핀 잡채, 돼지고기 요리, 과일가게 하는 W씨가 가져온 커다란 바나나, 빵, 각종 음료수, 비코, 대표님이 만드신 김치전 등을 잔뜩 먹었다. 나는 어제밤에 쿠키를 구워 가져갔다.


장애인인 남편이 수술을 하고 일을 그만두는 바람에 돈을 벌기 위해 공부를 그만두었던 S씨가 시간을 내어 잠시 들렀다. 휴대폰 공장에서 일주일에 엿새를 일한다고 한다. 텔레비전에서 들리는 단어를 모두 받아 써 캄보디아어-한국어 사전을 찾아본 다음 센터에 와서 물어볼 정도로 공부에 열심이었고, 이번에 드디어 한국어 능시도 합격했었는데. 하지만 이제 돈 벌어야 하니까 고향에 못 가지만, 다음에 고향에 갈 때는 돈 많이 벌어서 갈 거란다. 잠깐 와서 인사 하고 식사 하고, 좋은 향기가 난다며 쿠키를 코에 몇 번이나 다시 대어 보며 가셨다. 작년부터 나와 수학, 한국어, 음악을 공부했지만 이번학기에는 센터에 오는 시각이 달라 줄곧 만나지 못했던 G씨도 두 딸을 데리고 오셔서 오랜만에 뵈었다.



날씨가 무척 추웠다. 집에 와서는 동진님이 끓여준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쉬었다. 저녁에는 피자를 먹고 스파클링 와인을 마셨다. 그리고 슬슬 기말 보고서를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일 할까 하고 주섬주섬 일정표를 봤더니, 화요일 오전인 줄 알았던 제출마감일이 월요일 오전이었다. 기겁해서 논문  한 편을 얼른 사이버 강의실에 제출하고, 나머지 논문을 조금 쓰다가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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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센터에서 올해 마지막 수업을 했다. 그리고 점심으로 WI씨가 만들어 온 캄보디아 요리(라면잡채?)와 J씨가 만들어 온 필리핀 음식 비코(Viko)를 먹었다. 비코는 우리나라 약식과 비슷한데 코코넛을 넣어 훨씬 단맛이 났다.



그리고 곧장 홍대 앞 [카카오봄]에 가서 예약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받아 왔다. 달콤한 오렌지향 케이크였다. 그런 다음 장을 보고 스테이크를 만들었다. 온갖 레서피와 요리팁을 참고한 덕분에 대성공! 정말로 맛있는 스테이크를 요리해 무척 기뻤다. 그만큼 손이 가긴 했지만 이만한 맛이라면 또 해 먹을 만 하겠다.





크리스마스 케이크. [한국 SF 컨벤션]에서 동진님과 처음 만난지 오늘로 3416일. 그래서 큰 초 하나 당 천 일, 작은 초 하나 당 백 일, 제일 작은 초 하나로 열엿새 해서 이렇게 초를 가득 꽂아 함께 후 분 다음 스파클링 와인을 곁들여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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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센터에서 올해 마지막 수업을 했다. 그리고 점심으로 WI씨가 만들어 온 캄보디아 요리(라면잡채?)와 J씨가 만들어 온 필리핀 음식 비코(Viko)를 먹었다. 비코는 우리나라 약식과 비슷한데 코코넛을 넣어 훨씬 단맛이 났다.



그리고 곧장 홍대 앞 [카카오봄]에 가서 예약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받아 왔다. 달콤한 오렌지향 케이크였다. 그런 다음 장을 보고 스테이크를 만들었다. 온갖 레서피와 요리팁을 참고한 덕분에 대성공! 정말로 맛있는 스테이크를 요리해 무척 기뻤다. 그만큼 손이 가긴 했지만 이만한 맛이라면 또 해 먹을 만 하겠다.





크리스마스 케이크. [한국 SF 컨벤션]에서 동진님과 처음 만난지 오늘로 3416일. 그래서 큰 초 하나 당 천 일, 작은 초 하나 당 백 일, 제일 작은 초 하나로 열엿새 해서 이렇게 초를 가득 꽂아 함께 후 분 다음 스파클링 와인을 곁들여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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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에서 뜨개질 수업이 열려서 나도 갔다. 학생 분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뜨개질을 했다. 점심으로는 J씨가 만들어 온 필리핀 잡채와 파인애플 주스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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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센터 수업을 하고 서둘러 귀가, 어제 동진님이 홍대 앞에서 사다 준 떡볶이를 먹고 이 토론회에 갔다. 토론회는 유익했다.

 몇 주 전부터 일을 구하러 다니고 있다는 일기를 계속 써 오던 S씨가 취직했다며 한국어 공부를 그만두었다. 시간이 나면 다시 오겠지만, 경제력이 별로 없는 장애인 남편이 얼마전에 큰 수술을 했기 때문에 어떨지......3주 전에 센터에 온 베트남인 U씨의 시아버지가 오늘 아침에 며느리와 함께 와서 며느리 한국어 공부 시켜줘서 감사하다고 감사하다고 대표님께 인사를 하고 가셨다. U씨는 두 달 정도 전에 - 이제 세 달? - 한국에 왔다. 그동안 집 안에만 있다가 우리 센터에 와서 이제 한글을 뗐다. 집에서 나가지 못한 이유는 말을 못 하니까. 외국에서 데려온 새파랗게 어리고 예쁜 며느리가 나가서 길 잃어버리거나 험한 일(인신매매 등) 당할까 무섭고, 그렇다고 종일 한 집에 말 안 통하고 살림 못 하는 어린 여자애와 있자니 답답하기도 답답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시아버지가 며느리 손을 잡고 센터를 찾아온 케이스다.

임신 6개월에 들어선 J씨 배가 꽤 나왔다. 아기가 생겼다고 정말 좋아한다. 백일 지난 JA씨 아기는 이제 뭐든지 입에 집어넣으며 수업하는 커다란 책상 한가운데에서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정말 큰 명절이라, 9월 1일부터 ber가 들어가는 달 내내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라디오나 방송에서 크리스마스 노래를 틀며 크리스마스 시즌을 즐긴다고 한다. 1월 첫째주에 끝난다고. 크리스마스 날에는 어린 아이들이 악기를 들고 집집마다 찾아가 노래를 부르고 용돈을 받는단다. JA씨는 어렸을 때 동네 엄청 큰 부자집에 친구들과 가서 용돈 달라고 노래를 불렀는데, 집주인이 가짜돈을 준 적이 있단다. -_-; 그리고 필리핀에서는 공이 없으면 깡통으로 피구를 한단다.

내일 환경법 기말고사라 이제 공부하러. 남편에 대한 절대적 우선권을 확보하지 못하는 결혼관계에 대해 주기적으로 짜증이 폭발한다. 좋은 사람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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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에 내내 몸이 좋지 않았다. 다음 주부터 시험기간이고, 11월에 거의 매주 발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앓아눕게 될까봐 신경을 많이 썼다.

센터에서는 간이귀화 자격이 되는 A씨가 F2비자를 연장하러 출입국관리소에 다녀온 얘기를 써 왔다. A씨는 남편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긴 해도 비교적 관계가 원만하고, 남편에게 직장도 있다. 그래서 수업 후에 대표님께 뭔가 사정이 있는지 살짝 여쭈어 보았더니, 현재 한국에서는 한국인 자녀가 없는 이주여성에게는 실무상 국적을 잘 주지 않는다고 한다. 쫓겨나지 않으려면 애를 낳으란 말이다. 영주권이라도 받으면 좋겠지만 많은 남편들이 영주권 발급에 협조하지 않고 귀찮아한다. 물론 저소득층에서 결혼이주가 많다 보니 재정증명 문제가 걸리는 경우도 있다.

아이가 조금 자라고 한국어도 늘어 여유가 생긴 S씨는 요즈음 텔레비전에서 듣거나 주위에서 본 단어들을 사전에서 찾아 하고 싶은 말을 한국어 문장으로 열심히 만들어 와서 시간이 날 때마다 대표님께 많이 여쭈어 본다. 모어-한국어 사전이 부실하고 S씨가 아는 어휘만 사용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하니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번에는 '긴박하다'는 단어를 찾아 왔는데 '급하다'와 '긴박하다'의 뉘앙스 차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옆에서 보며 참 난감했다. 그런데 대표님이 제시하신 설명.

"남편이 화 났어요. 욕해요. 소리 쳐요. 이거 긴박하지 않아요. 남편이 화 너무 났어요. 칼로 찌르려고 해요. 이거 긴박해요."

그래, 바로 그런 상황이 '긴박'하지. 다른 풀이에 '급하다'와의 차이를 모르겠다며 아리송해하던 S씨가 대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와서는 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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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지나고 센터에 가 보니 초급 학생분들의 한국어 실력이 크게 늘어 있었다. "아이고 내가 속 터져, 속 터져", "어유, 답답해.", "설거지 빨리 빨리 해.", "아무 날도 아니고 추석인데 왜 이러니?" 등 수준 높은 생활 한국어를 몸동작(예) 가슴을 두드린다, 손가락질 한다)까지 곁들여 완벽하게 익혀 오셨더라. 초급반이라 한글을 읽고 말하기는 어느 정도 되지만 억양(intonation) 자체는 아직 모어 억양들인데, 추석에 배운 말에 한해서는 어쩜 그렇게 사투리나 서울말 억양까지 완벽한지, 그저 웃지요.



귀가해서는 샌드위치를 대충 만들어 먹은 다음, 밤잠 자듯 푹 잤다. 요즈음 동진님 회사일이 너무 바쁘고 힘들어 속상하다. 밤에는 샤느님이 나오신 [Yes Boss]를 보았다. 경쾌하고 재미있는 영화였고, 젊은 시절 샤룩칸의 매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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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센터 수업은 잘 진행되었지만, 조금 어려웠다. 캄보디아인 S씨가 수업에 합류했다. 역시 수업에 오기로 한 캄보디아 출신 SJ씨(N씨)가 아이 때문에 오지 못했기 때문에, 학생 중에 영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S씨 뿐이었다.

매개어가 있으면 수업을 진행하기가 훨씬 쉽다. 특히 초급 단계에서는 텍스트에 비해 그 텍스트를 이해했는지 판단하기 위한 문제가 어렵기 때문에 문제를 매개어나 모어로 바로 이해시킬 수 있으면 시간 활용 면에서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요즘 우리는 '떼굴떼굴 굴렀어요', '깔깔깔 웃었어요', '기운이 쏙 빠졌어요' 같은 흉내 내는 말로 이루어진 간단한 동화를 배우고 있다. 흉내 내는 말은 중요하지만, 교사의 흉내로 쓰임을 바로 알 수 있으니 어려운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내용을 잘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풀어야 하는 문제는 '이 글에서 호랑이와 두꺼비의 말과 행동을 보고 생각한 것을 토론해 봅시다'라는 한자어와 추상어와 지칭의 물결.......

그래서 필리핀 분들만 오셨던 지난 주에는 문제를 읽고, 영어로 각 단어의 뜻을 말한 다음 전체 문장을 영역해서 다시 읽어 주었다. 그러나 이번주에는 문제를 모두 한국어로 풀어 설명해야 했다. 지금까지 늘 한국어만 사용해 수업했으면서, 몇 주 사이에 영어를 쓰는 데 익숙해져버려 영어가 먼저 나오더라. 영어로 처음에 설명을 하더라도 어차피 한국어로도 다시 풀어 말하기 때문에 학생이 이해하지 못할 일은 없다. 모두가 이해하고 말로 답할 수 있을 때까지 천천히 계속 반복하는 수업이다. 또한 영어 설명을 이해한 필리핀 분들이 대답을 하면, 그 대답을 듣고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 학생도 묻는 바를 더 잘 알 수 있다.

그래도 단 한 명이라도 모르는 언어라면 매개어로 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S씨가 느낄지도 모르는 소외감 때문이다. 혼자만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대단히 난감한 일이고, 보통 그 사람만 문화적 배경이 다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독일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우리 반을 맡은 두 선생님 중 한 분은 독일어만 사용하셨고 다른 분은 스페인어도 쓰셨다. 당시 우리 반에 스페인어를 못 하는 사람이 나 하나 뿐이었다. 스페인어를 잘 하는 선생님은 독일어로 풀어 설명하려니 오래 걸리는 중요하지 않은 말이 나오면 스페인어로 뜻을 말하고 바로 넘어가곤 했다. 그 사이에 나도 내 독영사전을 찾아 보면 되고, 혹시 놓치면 옆 사람에게 영어로 물어보면 그만이다. 대체로 아주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십여명 중에 나 혼자 교사의 말을 못 알아듣는 상황은 꽤 힘들었다. 그렇잖아도 나 혼자 동양인이었는데.

이번 주부터 S씨가 합류한단 얘기를 듣고 그 때 생각을 하며 나는 꼭 한국어만 써야지 했는데, 수업 끝내고 나니 학생 중에 한 명만 모르는 매개어를 배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겠더라. S씨는 작년 여름부터 나와 수학과 음악 수업을 같이 했고, 함께 여행도 다녀온 사이라 소외감 부담이 좀 덜한데도 마음이 많이 쓰였다. S씨가 필리핀 분들보다 한국어를 조금 더 잘 하신 덕분에 무난하게 진행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겪어 봐야 아는 얘기를 꺼낸 김에 이주민의 한국식 이름 개명에 관해 쓰려고 했으나 - 캄보디아 출신 N씨가 최근에 국적취득하면서 개명도 했다 - 다음 주로 미룬다. 

나머지 시간에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샤룩 칸 뮤직비디오(영화 장면들)를 보았다. 98년 작 청춘드라마 [Kuch Kuch Kota Hai(कुछ कुछ होता है , Karan Johar 감독,1998)]도 보았다. 실로 대단한 해피엔딩이었다.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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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수업에는 지난시간에 결석한 E씨와 J씨가 왔다.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어서인지 자신감이 넘치고 교사의 만만한; 부분을 금세 파악하는 분이었다. 예습도 확실히 해 오고, 의욕이 있는 분이다. J씨의 아직 백 일도 안 된 아기도 와서 책상 위에 누워 함께 공부를 했다.

여름 한 달 동안 아이와 함께 고향 캄보디아에 다녀온 S씨가 한국어능력시험 공부를 하러 왔는데, 얼굴이 굉장히 밝아져서 보기 좋았다. 한 달 사이에 특별히 달라진 곳 없는데도 마치 예전보다 훨씬 미인이 된 것 같았다.

수업 후에는 너무 피곤해서 집에 와서 잠시 누웠다. 딱 30분만 자려고 했는데 잠결에 알람을 껐다가 깨 보니 세 시. 네 시까지 H사에 가기로 했던 터라 상훈님께 늦겠다는 문자를 보내고 허겁지겁 준비해서 나갔다. H사는 꽤 멀었다. 게다가 도착해 보니 폐를 끼친 적이 있는 B사와 같은 건물이었다. 당황했지만 모르는 척 했다. 일할수록 업만 는다.

회의에는 상훈님, 아스님, 상현님이 와 계셨다. H사의 담당자 분이 과학소설을 알고 이해하는 분이셔서 믿음이 갔다. H사는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각별한 곳이라 로고를 보니 기분이 묘했다. 아, 내가 어른이 되었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고나 할까. 정말 새삼스런 일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기획이 잘 진행되어 내가 더 참여할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오늘은 원래 지정사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러 가기로 한 날이었으나 아픈 동진님이 걱정되어 일단 귀가했다. BHC의 닭강정을 먹었다. 비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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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2일 금요일

일상 2010.07.02 12:30 |
오전에 시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했고, 센터에 다녀왔다. 센터에서는 E씨가 필리핀에서 가져온 말린 망고를 먹었다. 필리핀 노래도 배웠다. 베트남에서 얼마 전에 오셨다는 P씨와 처음 만났다. 오늘 수업은 민속놀이에 관한 것이라 아주 재미있었다. 중국에서도 공기놀이를 한다. 한국과 달리 공기는 4개이고, 양의 무릎뼈를 (앞뒤를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붉은 색으로 염색해서 쓴다고 한다. 양의 무릎뼈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인 것 같다.

오후에는 비가 많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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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이 종강한 덕분에 오늘은 오전부터 센터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지난 주에 기말고사로 자리를 비운 사이 캄보디아에서 WI씨가 새로 왔다. 아직 한국에 온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젊은 아가씨이다. 캄보디아 정부에서 한국남성과의 국제결혼을 3월부터 4월 말까지 일시중단했었는데, 중단이 풀리자마자 수속을 밟고 온 것 같다.

결혼중개업을 통한 국제결혼은 캄보디아 국내법상 전면 금지된 불법행위이고(인신매매와 노동착취에 대한 국제기구의 권고를 따른 입법이다), 캄보디아 국제결혼의 약 80%는 결혼중개업자를 통한 한국인 남성과의 결혼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프랑스 식민지 시대나 75년 대학살 전후에 해외로 이주한 캄보디아인 2, 3세와의 결혼이니 거칠게 요약하면 캄보디아에서는 한국인과의 결혼을 막는 것 = 불법결혼을 막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아주 당연하게 합법인 결혼중개업자를 통한 국제결혼은 사실 캄보디아 뿐 아니라 베트남에서도 불법이고, 필리핀의 우편주문신부금지법, 인신매매방지법과 UN 의정서에도 반할 가능성이 있다. 상업적 국제결혼중개는 미국에서도 불법은 아니지만 국제결혼브로커규제법과 인신매매방지법에 역시 걸린다. 우리나라는 UN의 인신매매 예방,억제, 처벌에 관한 의정서(팔레르모 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은 상태이다.

어쨌든 WI씨는 한국어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대표님이 기역니은부터 따로 시간을 내어 가르치고 계신다. 말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캄보디아 출신인 S씨가 듣는 수업에 같이 들어오고 있다.

태국의 탁신 전 총리와 붉은 셔츠단 건으로, 원래 사이가 썩 좋지 않았던 캄보디아와 태국 사이의 긴장이 높아진 모양이다. 캄보디아와 태국은 앙코르와트를 두고도 분쟁중이라고 한다. 고향에 어머니, 언니, 오빠가 남아 있는 S씨가 걱정이 많다. 태국에서 온 E씨에게 "언니, 태국에 왜 빨간 옷 노란 옷 있어요?" 하고 묻는다. "우리 다 결혼해서 한국 왔으니까, 캄보디아, 태국, 상관 없어요." 한다. E씨도 태국에 가족이 있지만, 붉은 셔츠의 영향력이 약한 남부 지방 출신이라서인지 S씨처럼 걱정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지도에서 남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부분 어디쯤을 가리키며 "이 밑으로 빨간 옷 못 와요. 전 대통령 나쁜 사람이에요. 돈 많아요. 사람들이 다 싫어해요. 우리 고향에는 절대 못 와요." 하고 설명을 한다. S씨는 센터를 나가면서도 "언니, 우리는 싸우지 말아요, 친하게 지내요." 하고 한 번 더 돌아보았다.

그 사이에 또 많은 일이 있었다. 기록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일들, 기억해야 하지만 차마 기록할 수 없는 일들.

나는 오늘 E씨가 임신을 하지 못하게 된 이유를 들었다. 남편의 장애 때문이리라고 지레짐작 하고 있었으나 그보다 훨씬 끔찍한 이야기였다. E씨는 아직도 눈 수술을 하지 못했다. 안과에 가서 한참을 기다렸지만 "나 외국인이에요. 돈 없어요. 나 건너가요. 내 뒤에 온 사람들 먼저 들어가요. 세 사람, 세 사람 건너갔어요. 간호사한테 왜 나 건너가요? 물었더니 지금 들어가래요. 의사가 안 봐줘요. 한 달 뒤에 다시 오래요. 나 안 보여요. 눈 계속 가려워요. 이제 수술 해야 해요. 한 달 못 기다려요. 다른 병원 찾을 거예요." 하지만 그녀는 오늘 국어 수업도 하지 못하고 남편의 병수발을 드는 사이에 잃은 청소일자리 대신 다른 일거리를 찾으러 갔다.

지난 2주 동안 J씨가 왜 아무 연락도 없이 센터에 오지 못했는지도 들었다. 그녀는 시아버지에게 빼앗긴 휴대폰 대신에 부모에게 눌려 사는 남편이 몰래 개통해 준 새 휴대폰을 가지고 왔고, 드디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머리를 염색하고 예쁜 초록색 원피스를 입고, 싸구려이지만 큐빅이 잔뜩 박힌 화려한 가방을 들었다. 그녀는 그간 있었던 일을 말하며 나도 못 참아요, 나도 이만큼 쌓였어요, 나 더 예쁘게 할 거예요, 안 예쁘면 일도 못 구해요, 돈 못 벌어요, 하고 언성을 높이며 가슴을 두드렸다. 그리고 주민번호가 제대로 찍힌 주민등록증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민증을 돌려보며 그녀를 축하했고, 오늘 옷차림이 참 예쁘다고, 아기 엄마가 아니라 아가씨 같다고 했다.

사회복지학과 학부 시절, '왜'라고 질문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우리는 여러가지 주어진 상황에서 '왜(why question)'가 아니라 '어떻게(How question)' 라고 묻는 연습을 계속했다. 가끔은 교수님도 한참 설명 중에 실수로 무심코 "왜"라고 물으실 때가 있었고, 그러면 우리는 웃었다. 나는 '어떻게 질문'을 대화 기술의 일종으로 생각했었다. 적절한 맞장구나 눈맞춤처럼, 더 원만하고 열린 대화를 이끌어가기 위해 몸에 잘 익혀 두면 좋은 요령처럼 생각했었다. 

그러나 절대로 '왜'냐는 질문을 던지지 말아야 하는 순간이 존재한다. 이것은 대화법의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의 삶에는 타인이 결코 왜라고 물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모르는 사이에 지금의 센터에서 일한 지 일 년이 지났다. 전국 한 자리 등수인 모의고사 성적표에 의기양양해 하며 대입을 통과하고, 뭐가 어땠든 가치로운 일을 하겠다며 고개를 빳빳이 들고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한 날로부터는 십 년이 지났다. 그 사이를 채우는 폐에 가까웠던 봉사활동들과 기억에서 쉽게 사라진 실패한 시도들. 그리고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돌이켜 보면 형편없는 사회복지학도였던 내 옆을 흘러간 수많은 책과 말들을 지나, 공정함과 정의와 복지와 책임에 대한 거대담론을 넘어, 삶에는 이유가 무의미한 지점이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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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전날이었다. 오전에 학교에 갔다가 현대백화점 아루에 들러 대표님께 선물로 드릴 케이크를 사서 센터에 갔다. 학교 수업이 조금 늦게 끝난데다 스승의 날 전날이다 보니 식품매장이 붐벼, 평소보다 센터에 조금 늦게 도착했다. 가 보니 스승의 날이라고 학생 분들이 태국 국수와 과자, 과일을 한 상 가득 차려 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E 씨가 직접 포장하셨다는 보라색 비누 카네이션을 선물로 받고 다함께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이번에 요리를 해 온 S 씨는 태국에서는 요리를 전혀 하지 않았지만, 한국에 오니 내가 하지 않으면 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분이다. 요즈음은 복지관에서 바리스타 공부까지 하신다고 한다. E 씨에게 꽃다발이 정말 예쁘다고 했더니 사실 처음 해 보았단다. 어제 밤 10시에 퇴근하면서 꽃을 못 구할까봐 조마조마했는데, 마침 문 연 꽃집이 있어 그 앞에서 꽃 포장하는 모습을 한참을 눈으로 보고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포장 부직포를 팔아달라고 했는데 팔아 주지 않아서, 다른 꽃집을 찾아가 사서 새벽 두 시까지 포장하셨단다.

학생 분들이 선물을 준비했다고 하셨다. 노래 선물이었다.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 태국의 노래를 들었다. E 씨는 의상을 갖추어 입고 휴대폰에 넣어 온 음악에 맞추어 태국의 무용도 하셨다. 아주 예뻤다. 모두들 태국에서 인기 가수가 왔다며 박수를 치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수업을 했다. 아기가 아파 경황이 없었던 J 씨가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기를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며 서둘러 나가셨다가, 다시 들어와 어디서 구해 왔는지 장미꽃 한 송이를 주고 가셨다. 나는 양손에 꽃을 들고 폴짝 뛰며 기념 사진을 찍었다.

저녁에는 우당기념관에서 [법사회학] 보충 수업을 했다. 귀한 자리였지만 너무 피곤해서 제일 먼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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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한 한국인은 대략 15,000 ~ 20,000 단어를 이해하고, 그 중에 1/3 정도를 자신의 발화에 사용할 수 있다. 전자를 이해어휘, 후자를 사용어휘라고 한다. 신약성경은 4,800여 단어로 이루어져 있고 셰익스피어는 21,000 단어 정도를 사용했다. 조사된 작가 중 가장 어휘량이 풍부했던 빅토르 위고는 60,000 단어를 '사용' 했다.

빈곤, 노동, 이주 같은 소수자 주제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면, "그래, 뭔가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알겠어. 하지만 왜 좀 다른 방식으로 말하지 않는거야?" 라는 질문이 나온다. 더 설득력 있게, 더 논리정연하고 엄밀하게, 더 온건하게 말해 주길 바란다. 그러나 때로는 호의에 기반한("난 정말 이 문제를 이해하고 싶어.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말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을 거야.") 이러한 요구가 간과하는 것은, 어휘량과 어휘를 다루는 방식 역시 학습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평등하지 않다.

교육기회에 계급격차가 생길수록 소수자가 말로 (더 나은 교육을 받은) 다수를 설득하기는 어려워진다. 자신이 가진 가장 근본적이고 때로는 유일한 수단인 몸으로 뜻을 표현하려고 시도하게 된다. 달리 말하면 시끄럽게 데모질을 하거나 진지한 문제 앞에서 춤 추고 노래나 부른다.

요전에 TOPIK(한국어능력시험) 3급 기출문제 지문에 '아침 식사 합니다'라는 문장이 나왔다. 식당의 광고지였다. 태국에서 온 E씨가 이 지문을 보고 "아침식사, 다른 말 있어요. 지, 조....?"라고 물었다.
"아, 조식이요?"
"네, 조식, 다른 밥도 있어요. 뭐라고 해요?"
나는 '조식, 중식, 석식, 야식'을 쓰고 한자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한국인은 3식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조식, 중식, 석식은 밥이지만 야식을 먹었을 때는 보통 밥을 먹었다고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E씨가 말했다.
"저는 매일 야식 먹어요. 빵집, 새벽 세 시 까지 가야 해서, 새벽 두 시에 밥 먹어요. 야식 안 먹으면 못 버텨요."

E씨는 태국에서 초급대학을 졸업했다. 속아서 결혼한 한국인 남편은 정신지체장애인이다. 한번은 다른 학생 분이 데려온 순한 아기를 귀여워하다가 "우리 집 애는 안 때려도 울어요."라고 한 적이 있다. E씨에게는 아이가 없다. 생계를 위해 새벽에는 빵집에서 청소를, 밤에는 식당에서 설거지를 한다. '~지 않으면 못 버티다'는 E씨 수준의 한국어 학습자가 배워 알 만한 표현이 아니다. 함께 일하는 분들에게서 들어 익혔으리라. 몸으로 그 의미를 이해했을 것이다. 나는 삶이 언어가 되고, 언어가 끼니가 되고, 끼니가 계급이 되어 다시 말로 표현되는 이 날것 그대로인 현실 앞에서 아연해졌다.

내가 지금 일하는 센터의 문을 처음 두드렸을 때, 대표님은 '배운 사람만 가르쳐 본' 내게 수업을 맡기기를 망설이셨다. 나를 받아들인 것은 내가 - 거창하게도 - 작가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이 분들이 자기 이야기를 말로 할 수 있는 만큼 쓸 수 있게 되어 다른 한국인들에게 보일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 수준까지 한국어를 배울 만한 여유가 있는 학생은 거의 없어요. 하지만 노력해 보고, 정 선생님이 글을 쓰신다고 하니까, 혹시 언젠가 이 분들의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다면......

나는 저 말줄임표만큼의 정적을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E씨는 아기를 갖고 싶어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도 E씨가 한국어로 자신의 삶을 태국어로 하듯이 표현할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E씨가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날도 오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그릇을 날라 씻거나 바닥을 닦거나 쓰레기통을 비울 E씨가 아플 때 병원에 가서 증상을 정확히 설명하고 의사의 설명을 다 알아 들어 건강하게 나이들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새벽 두 시 반.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누워서 아이폰을 갖고 놀다가, 지금쯤 서둘러 야식을 먹고 빵집으로 가고 있을 E씨를 떠올리고, 내가 때로는 주먹처럼 휘두르고 있는 이 모든 말, 말들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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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뗏목지기™ 2010.05.12 09:3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뭔가 가슴이 먹먹해지는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현민의 구속일이었다.

수강신청변경기간에 법조윤리를 넣었기 때문에, 1교시에 맞추어 학교에 갔다. 버스를 탈까(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환승할 필요가 없고 앉아 갈 수 있다) 지하철을 탈까(두 번 환승해야 하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버스보다 빠르다) 고민하다가 아직은 괜찮을 것 같아 버스를 탔는데, 정말 아슬아슬하게 들어갔다. 지정좌석제인데 내 자리는 맨 앞이다. 올해의 운은 어제로 다한 모양이다.

그래도 가나다 순으로 앉아서, 지난 학기에 가까이 앉았던 앞번호 기봉오빠, 뒷번호 어연씨와 이번 학기 들어 처음으로 얼굴을 보고 인사할 수 있었던 것은 좋았다. 기봉오빠는 참 멋진 분이다. 성실하고 겸손하고,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는 말하기를 할 줄 아신다고 할까. 가까이서 자세히 보고 배우고 싶은 부분이다.

법조윤리 시간에는 [뉴스 후] 비디오를 보고 변호사의 윤리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2시간 연강인데 쉬지 않고 이어져서 나중에는 무척 힘들었다.

수업이 끝난 후에는 버스를 타고 센터로 갔다. 다행히 현대백화점 앞에서 센터 근처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더라. 바람이 많이 불어 몹시 추웠는데, 센터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평소보다 더 복작복작해서 사람 열기로 따뜻했다. 어제 선물로 들어왔다는 롤케이크를 나누어 먹고 있기에, 얼른 끼어들어서 허겁지겁 먹었다. 필리핀에서 오신 두 분이 새로 오전 수업에 참여하신다고 한다.

오늘의 읽기 수업은 잘 되지 못한 것 같다. 예문을 하나 잘못 들었던 것 같아서 계속 신경이 쓰인다. E씨와 한국어능력시험 3급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 시험 너무 어렵다! 한국인에게 풀라고 해도 만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 수준이다. E씨가 J씨의 아들을 보며 "저도 아기 있고 싶어요."라고 했다. E씨는 아침에는 빵집 청소를 하고 저녁에는 식당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 시급은 5,000원이다. 오전에 새로 온 필리핀 출신 W씨는 한국에 온지 삼 년이고 아이도 둘 있지만, 남편이 집에서 내보내주지 않아 한국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한국어도 텔레비전을 통해서밖에 배우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글 자모 쓰기도 잘 안 되는 상태. 게다가 집에서 잠시만 나가도 남편이 전화를 해서 어디에서 뭐 하느냐고 화를 낸단다. 남편이 센터에도 여기 뭐냐고 불쑥 찾아왔다가, 대표님을 보고 돌아갔던 모양이다. 국적과 영주권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이가 둘 있고 센터에도 자주 오시는 G씨가 아직 국적도 영주권도 없는 외국인 상태라는 사실을 알고 조금 놀랐다. 아이 나이를 생각하면 결혼한지 오 년이 넘었을 텐데, 왜 영주권조차 없는지는 묻지 못했다. 그보다도 당장은 G씨의 허리 통증이 걱정이다. 몇 년 동안 계속 아이를 업고 다녀서 이제는 조금만 허리를 써도 누워서 쉬어야 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지만 아직 정형외과에 가지 못했다. 병원에 가서 디스크인지, 어느 정도인지 검사를 받아 보았으면 좋겠는데......활동 외 시간에 근처 병원에 함께 가고 싶은데 그렇게까지 개입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어서 망설이고 있다.  

수업을 한 다음에는 집으로 급히 가서 옷을 갈아입고 노트북을 놓아 둔 다음, 저녁을 먹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인스턴트 떡국을 먹었다. 그리고 서부지검으로 갔다. 오늘은 동기 신행, 02학번 수영 씨, 날맹 씨, 나,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고 계신 분(성함을 미처 여쭙지 못했다) 다섯이 현민을 배웅했다. 5시 40분까지 출두라 근처 뚜레주르에서 커피와 빵을 먹고 (먹이고?) 45분쯤 지검으로 갔다. 함께 간 사람은 올라가지 못하니 엘리베이터 앞에서 인사. 지난 주에 그냥 돌아왔을 때는 얼떨떨했는데, 막상 이렇게 가는 것을 보니 정리할 시간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싶었다. 웃으면서 갔고, 웃으면서 보냈다. 호송차가 나가는 것을 보려고 지검 앞에서 벌벌 떨면서 기다렸는데, 여섯 시 좀 넘어서 커다란 버스가 한 대 나갔다. 문제는 완전히 새까매서 안에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었다는 점. 9층까지 갔다가 이렇게 빨리 나오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앞에서 밍기적거리면서 더 기다렸다. 호송차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도주우려가 없는 양심범의 경우에는 퇴근하는 검사 승용차를 타고 감옥에 가는 경우까지도 있어서 가늠하기 어렵다고 한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 결국 수영 씨가 이미 갔는지 알아보겠다며 검찰청 1층으로 들어갔다. 한참 있다 나와 "신분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하고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며 아까 그 호송차로 간 것이 맞다고 한다.

나는 신촌 쪽으로 갈 일이 있다는 날맹 씨와 택시를 타고 학교로 갔다. 날맹 씨도 병역거부자로, 현민이 나오기 전에 들어갈 예정이기 때문에 현민과는 오늘을 마지막으로 면회를 제외하면 몇 년을 보지 못하리라고 한다. 신촌에 있는 비폭력 대화 센터에서 열리는 비폭력 대화 연습모임에 가는 길이란다. 비폭력 대화를 배우는 곳이 있다니 이번에 처음 알았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거나 상대를 공격하지 않고 공감하는 말하기를 하는 법을 배우는 곳으로 상담가나 아이들을 많이 대하는 교사 같은 분들이 찾아오신다고 한다. 입문 반은 한번에 세 시간씩 해서 6주 코스. 날맹 씨는 코스를 다 들은 사람들끼리 만나서 연습하는 단계에 있단다.

추운데 너무 오래 떨었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학교까지 들어갔다. 그러나 공익인권법 학회 모임 장소인 강의실에 가 보니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준성에게 전화하니 조금 전에 나와서 밥 먹으러 가는 길이란다. 춥고 힘들었으나 고기 먹겠다고 다시 학교 밖까지 꾸역꾸역 걸어갔다.

고기집에 도착해 보니 딱 고기를 받아서 굽기 시작하는 참이었다. 좋은 타이밍이다. 개강하고 처음으로 만난 동기 분들도 꽤 있었다. 2기 분들을 본 것도 물론 처음. 뒤늦게 끼어든 터라 누가 누구인지,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잘 알 수 없었지만 조금 들뜬 분위기가 즐거웠다. 일 년 버텼다는 실감도 났다. 고기를 잔뜩 먹었고, 고기 먹은 기세로 27일 세미나 발제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현주언니와 수진이 한다고 해서 좋은 팀이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공감에서 인턴하며 성소수자 인권 사건을 맡았던 수진에게, 원래 정한 주제인 '난민' 말고 '성소수자'로 발제를 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해 보았다. 

2차를 갈까 집으로 갈까 망설이던 차에 퇴근길인 동진님에게서 시부모님이 잠깐 들르신다는 문자가 와서 집으로 왔다. 고기 냄새가 잔뜩 밴 옷을 벗고 샤워부터 했다. 시부모님은 동진님 몸보신 약만 주고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바로 돌아가셨다. 모처럼 오셨는데.

아슬아슬한 컨디션으로 이렇게 무리를 한 끝에, 밤에는 다시 목이 아파 끙끙 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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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5일 금요일

일상 2010.03.05 23:24 |

오늘 센터에서는 '은혜 갚은 꿩' 읽기 수업을 했다. 내가 좀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꿩을 잡아먹으려던 구렁이를 활로 쏘아 죽인다. 그날 밤, 헛간에서 잠자던 나그네에게 죽은 구렁이의 누이가 와서, 동트기 전에 빈 절에서 종이 세 번 울리면 살려주겠다고 한다. 꿩이 머리로 큰 종을 세 번 들이받아 울린다. 구렁이는 약속대로 사라지고, 꿩은 머리가 깨져 죽는다.

 

오라버니를 잃은 구렁이는 자기가 한 말을 지키는 정직한 구렁이라서 복수를 하지 못했고, 나그네가 구해 준 꿩은 딱 한나절 더 살았을 뿐, 결국 죽었다. 나그네가 꿩과 구렁이 사이에 끼어들지 않았다면 꿩 한 마리만 죽었을 텐데, 나그네가 선의로 개입한 바람에 결국 꿩도 죽고 오라버니 구렁이도 죽고 나그네의 여정은 지체되었다. 뭐 이래. -_- 누이 구렁이가 불쌍해서 마음이 아팠다.

 

학기 초라 새로 온 분들이 있어서 애국가를 배웠다. 알아 두어 나쁠 것 없기도 하고, 국적심사 때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가르친다. 읽기 수업에 하얼빈에서 온 J씨가 합류해서 학생이 늘었고, 다음 주부터 E씨와 한국어능력시험 3급 준비를 하기로 했다. 센터에 오는 분들 중에 서글프고 안타까운 사연 없는 사람이 없지만, 오늘부터 공부하면 안 되냐고 의욕을 보이는 E씨를 마주하며 순간 목이 메었다. 그렇지만 그와 나 모두를 위해, 유약한 감상에 침잠하기보다는 그에 발을 단단히 딛고 서서 눈앞의 삶을 보아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침을 삼키고 "E씨 책으로 해요. 공부해 오세요. 열심히 해요." 하고 두주먹을 꽉 쥐어 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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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aptj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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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소식 2010.03.06 16:05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일단 일어난 일을 최선으로(?) 수습하는 방법... 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런지? 제 경우에는 단지 은혜라는 건 무겁구나.. 란 느낌이었지만.. (먼산)

    • Jay 2010.03.06 19:0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승인 전에 닉만 보고 스팸댓글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사람이 단 글이라서 놀랐네요. (먼 산)

어제는 오늘 오전 제출인 헌법 보고서를 끝내야 했는데 날씨 탓인지 너무 졸렸다. 참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저녁 10시 즈음에 아예 씻고 잤다가, 새벽 3시 반에 일어났다. 충분히 잤기 때문인지 오히려 효율이 높아져 무사히 보고서를 쓸 수 있었다. 만약 억지로 깨어 있었으면 아마 밤을 샜을 것 같다. 조교가 당연히 조교실에 있을 줄 알고 덜렁덜렁 갔는데, 가서 보니 조교실 배치표에 헌법 조교님이 안 계셔서 당황했다. 교수님 연구실을 같이 쓴다고 한다. 다행히(?) 부재중이라 문 밑으로 슉 밀어넣고 왔다.

그 다음에는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다문화 비빔밥 콘서트에 갔다. 처음에는 조금 착각해서 비빔밥 만들러 가는 문화체험 행사일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서울시에서 하는 공연행사로 비빔밥은 그냥 준단다. 요즈음 식생활이 상당히 비참한지라 (아무리 맛있는 유기노우스 다크우스 밤호두스 브라우니라도 매일 아침으로 브라우니만 먹고 있으면 좀 괴롭다) 득 본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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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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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공감이 있는 비빔밥"

- 색깔 있는 공연
춤으로 하나되는 댄스동아리 "동그라미" (중구 건강가정지원센터 공연팀)
다문화여성이 만드는 우리의 소리 "Sound of Music" (영등포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공연팀)
다문화와 함께하는 "밸리아트리움" (동대문구 건강가정지원센터 공연팀)

-이주여성 한국생활 도전기 1탄 (샐러드극단)

2부 "Adieu 2009 with Jazz"

- 단발머리
- 무인도
- Pent-up House
- 꽃밭에서
- A Little Drummer Boy
- Santa Clause is Coming to Town
((Ronn Branton Jazz Group: 론 브랜튼, 마틴 젠커, 켄지 오메, 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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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었다. 2부의 재즈 공연은 엄청 본격적이어서 깜짝 놀랐다. 예상치 못했던 크리스마스 선물이랄까. 샐러드극단의 연극도 무척 인상깊었다. 나중에 들어 보니 1부 공연 행사는 신종플루 때문에 무대에 설 수 있는 사람/팀이 확 줄어서 섭외와 준비가 꽤 어려웠던 모먕이었다. 

서울여성플라자는 연초에 공감 예비법조인 인권법 캠프를 했던 장소이기도 해서, 식당에서 비빔밥을 먹으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게 벌써 십 개월 전이다. 그 사이에 내가 과연 무엇을 했는지 상념에 잠기기에는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에(요즈음은 날씨 탓인지 늘 배가 고프고 졸립다.) 그냥 밥을 열심히 먹고 자판기 커피를 한 잔씩 뽑아 옥상정원에 갔다. 순안 씨와 어라핀 씨가 비행기에서 주는 견과류 간식을 꺼내서, 후식으로 커피에 곁들여 먹었다. 태국 요리에 많이 쓰이는 캐슈넛은 나무에 열린다. 과육 안에 씨가 든 것이 아니라, 과일이 맺히고 그 아래에 캐슈넛이 매달리듯이 열려서 그 부분을 손으로 따서 거두어 쓴다. 과육과 캐슈넛이 이어진 부분의 씨에 독이 있어서 딸 때는 반드시 장갑을 끼고, 딴 다음에는 칼로 윗부분을 하나하나 잘라내야 한다니 꽤 손이 가겠다. 과육은 먹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썩 맛이 있지는 않고, 매실과 좀 비슷한 떫은 맛이 난다. 어라핀 씨는 남부 출신이라 집에 캐슈넛 나무도 몇 그루 있었다는데, 같은 태국 출신이라도 북부에서 온 순안 씨는 캐슈넛 나무를 실제로 본 적도 없단다.

오후에는 포럼이 있었지만 새벽에 깨어 있었다 보니 피곤하기도 하고 기말고사도 걱정이 되어서 집에 와서 한 숨 잤다. 정말 요새 왜 이렇게 졸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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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aptj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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