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일 목요일

일상 2011.09.01 18:55 |

8월 8일에는 철 들고 처음으로 한의원에 갔다.


8월 9일에 동대입구역 근처에서 프레시안 북스 편집위원 분들 및 기자분들과 만나 냉면을 먹고 차를 마셨다. 이후 민변 로스쿨회원모임 뒷풀이에도 갔다. 기운이 날까 해서 한 나들이였는데 기운은 전혀 나지 않았고, 개운치 않은 회의감만 끌어안고 돌아왔다. 그럼에도 사람을 만났다는 점은 좋았으며, 오가는 길에 읽은 [표백]이 정말로 강렬한 이야기라 만족스러웠다. 밤에는 악몽을 꿨다.



8월 11일에 시아주버님 가족이 출국했다.


8월 12일에 장강명 님, 동진 님과 아벡누에서 점심을 먹었다. 나의 글은 너무 착한데, 심사위원들은 못된 글을 좋아한다는 조언을 들었다. 못된 글은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지만 몇 년 만에 강명님을 만나 반가웠다. 대화는 흥미로웠고, 헤어지고 나서도 이것저것 생각할 수 있었다. 내게는 힘든 장소가 강명님에게는 멋과 낭만이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이 왠지 우스꽝스러웠다. "서울대보다 훨씬 낫지 않아요?" 라는 말에 웃음이 나서, 며칠 전에 강의실에서 본 커다란 일본 바퀴벌레 이야기를 했다.


8월 14일부터 8월 16일까지 동진님과 만남 10주년 기념 휴가 삼아 송도를 다녀왔다. 송도는 모델하우스의 모형 같은 도시였다. 효율성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번쩍이는 유리로 된 건물들과 한산한 도로, 녹색성장풍 인공적인 공원, 외국 국기, 영어 병기 표지판 등이 있었다. 야경은 [블레이드 러너]의 한 장면 같았다. 독특한 공간이었다. 서울을 잠시 떠나 동진님과 조용히 쉬니 굉장히 행복하고 평화로웠다.



8월 18일에 문지문화원 수강생이셨던 해울 님과 뒤빵에서 점심을 먹었다. 해울 님이 피험자로 참여하신 공감각인 연구 보고서를 보여 주셨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이러면 안 되는 건가 하고 생각하면서도 내 이름이 해울 님에게 무슨 색으로 보이는지 묻고야 말았다. 연한 파스텔톤이라고 한다.

8월 20일 토요일에는 텝스를 쳤다. 급히 신청해서 덜렁덜렁 가서 보았는데 어휘가 너무 어려워서 귀가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핫팬츠를 입고 냉방이 센 교실에 두 시간 반 앉아 있었더니 냉방병 증세가 와서 걱정이 되었다. 텝스를 박멸하자며 분노해댔으나, 30일에 나온 점수가 2년 전과 비슷해서 대충 만족했고, 매우 안도했다.

8월 21일에 이다 님, 명훈 님과 홍대입구 카주라호에서 만나 이다 님네 피망 및 아삭이 판매촉진을 위한 피망 단편선 출간을 논의했다. 명훈 님은 이미 피망 단편을 다 쓰셨더라. 농사가 10월이면 거의 끝나니 내년 6월 피망 판매에 맞춰 준비하기로 했다. 즐거웠지만, 어제에 이어 냉방 때문에 힘들었다.



8월 24일 오후에 민영 고모와 명아가 집에 놀러 왔다. 삼 년 반 만에 귀국한 명아가 반가웠다. 그다지 달라진 데가 없었고, 예전보다 안정된 느낌이었다. 보스톤에서는 깻잎을 구해 먹기가 매우 힘든데, 한국에 와 보니 아버지(내게는 작은 할아버지)의 주말 농장에 깻잎이 가득했다고 한다. 명아는 너무나 황홀한 표정으로 "깻잎 천국이었어!"라고 외쳤다. 선물로 웃는 얼굴 얼음틀과 봉투를 주기에 당연히 편지라고 생각하고 받았는데, 나중에 열어 보니 편지가 아니라 늦은 축의금인 듯한 달러라서 당황했다.

8월 25일 점심은 라키난 님, 인수 오빠와 연희동 중식집 향미에서 먹었다. 소룡포가 먹고 싶다고 했더니 인수 오빠가 맛있는 집을 찾아 주었다. 선물도 받았다.



8월 26일에는 아우님과 처음으로 경락맛사지라는 것을 받으러 갔다. 8월 중순부터 냉방병 내지 여름감기라고 의심하던 증상이 우리 가족의 강력한 우성유전인 알러지 비염 증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8월 27일 오후에는 여의도에서 전션을 잠깐 만나 차를 한 잔 마셨다. 나이가 들수록 분명해지는 취향과 고집, 깊은 관계 형성의 어려움, 이미 들어버린 말이 남기는 아물지 않는 상처에 관해 말했다. 전션은 [종로의 기적] GV에서 "여러분이 커밍아웃을 했으면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이런 영화를 보았다고, 어떻게 생각했다고, 주위에 말해 달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저녁에는 동진님과 고기를 먹었다.

8월 30일 낮에는 이명현 박사님의 작업실에 가서 이 박사님, 상준 님, 만화평론가 백정숙 님을 만났다. 즐겁고 새로운 이야기가 많았고, 생각할 다음 일이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 이 박사님의 작업실은 무척 인상적인 공간이었다. 재미있어 보이는 책이 엄청 많았다! 나도 나이가 들면 귀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다.

밤에는 E지에 원고를 보냈다.

8월 31일은 개강 전날이었다. 어머니와 세브란스 병원에 갔다가 현대백화점 지하에서 덮밥을 포장해 돌아와 허겁지겁 먹었다. 공간 자체에 대한 공포심이나 거부감에 대해 생각했다. 언젠가 글로 쓸 수 있다면 좋겠다. 요즈음 내가 쓰거나 뱉는 말은 대부분 언어가 아니라 고함 내지 신음 같은 것이다. 날것인 고통에서 나오는 신음에는 강한 힘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 힘을 갖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9월 1일 오늘은 개강을 했다. 전날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고 세 시간 정도 자다가 새벽에 악몽을 꿔서 깼다. 악몽은 학교와 상관 없는 내용이었다. 첫날이라 수업을 다 하지 않아, 점심 때 동교동 삼거리로 가서 아스 님을 잠깐 뵙고 함께 식사를 했다. 책 드리고 차 한 잔 마시고 일어날 생각이었는데, 막상 음식을 보니 식욕이 나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시간이 금세 갔다.



학교로 돌아와 수업을 마저 듣다가, 비둘기파는 모두 멸종하리라는 강한 확신을 갖고 조퇴했다. 귀가길에 택시 기사님이 학생이냐고, 전공이 뭐냐고 물었다. 그냥 철학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법학이라고 해서 좋았던 적이 없다. 기사님이 IMF때, 무슨 연구소를 운영하던 총무가 최고경영자과정 동문들이 모은 기금 일억 오천 만원을 들고 사라졌던 일을 이야기했다. 동문들이 회장에게 물어내라고 하자 회장은 도의적 책임은 질 수 있어도 돈은 낼 수 없다고 해서 난장판이 되었다고 한다. 그 때는, 아이엠에프 때는 다 그랬어요, 동문회고 뭐고 다 망가졌어. 지금 같으면 뭔가 안전 장치를 했겠지, 그때는 그런 것도 없었어. 회장이 한 오천 내고, 우리도 최소한 천 오백, 천 오백은 냈고 부회장은 삼천인가 냈지. 그의 목소리에는 분기가 없었다. 개인택시가 아니라 회사택시였다.

집에 와서 동진님이 며칠 전에 가져온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퍼 먹고 어제 어머니가 손에 들려 주신 에그타르트도 하나 먹었다. 그리고 밀린 일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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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9.07 12:28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점심 때는 어머니께서 오셔서 맛있는 돈가스를 만들어 주셨다. 어머니 표 돈가스가 몇 주 전부터 먹고 싶었던 터라 정신없이 흡입했다. 밑반찬도 이것저것 생겼다. 후식으로는 카푸치노를 마셨다.

언어교환 파트너였던 마사미가 24일에 일본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신촌 카페베네에서 마지막으로 만나 차를 마시며 삶의 분기점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백만 광년의 고독]을 선물로 주었다.

저녁에는 소수자인권위원회 준비모임에 갔다. 정말 참여하고 싶었기 때문에 조금 무리해서 얼굴을 들이밀었다는 느낌이 있지만, 내게는 무척 유익하고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현명하고 능력 있고, 의지와 신념을 갖고 꾸준히 일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정말로 많다. 많이 배웠고, 나는 과연 이 분들에게서 받은 만큼 뭔가 나눌 수 있는 사람일까 집에 돌아오며 고민을 많이 했다. 얼마나 진심인가보다 얼마나 유능한가가 중요한 때와 장소가 있다.

오늘 만난 분 중 헉 소리나게 멋진 분이 내 책의 독자라며 여러가지를 물어 주셔서 무척 기뻤다. 첫 책이 나왔을 때, 영풍문고까지 가서 매대에 놓인 책을 보며 만약 지금 내가 죽는다면 저 책이 나보다 오래 살아남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내 신념, 생각의 조각, 내 이름을 저 책이 이어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책은 이제 절판되었고 그 뒤로 열세 권의 책이 더 나왔으며, 나는 지금도 멀쩡히 살아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내가 죽은 다음에 생명연장의 꿈처럼 남는 책이 아니라, 내 책을 읽은 다음에 나와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할지를 생각한다. 나는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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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5일 일요일

일상 2010.09.05 21:30 |
평소에 전혀 운동을 하지 않다가 어제 갑자기 관악산 하산을 한 여파로 엉덩이와 허벅지가 매우 아팠다. 일어나고 앉을 때마다 끙 소리가 절로 났다. 걸을 때도 어기적어기적 천천히 걸어야 했다.

오후에는 대청소를 했다. 어머니께서 오셔서 도와 주셨다. 우선 맛있는 어머니표 순두부찌개를 먹고 청소를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집을 치우고 싶었는데 정리를 한다고 열심히 움직여도 여기 있던 물건이 저리로 갈 뿐, 내가 원하는 만큼 깨끗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손길이 한 번 닿고 나자 집이 번쩍번쩍! 늦은 점심으로는 냉장고에 남아 있던 쌈채소를 잔뜩 넣은 비빔면을 먹었다.

한숨 잔 다음 일어나 저녁으로도 순두부 찌개를 먹고 일을 좀 했다. 밤에는 일본에서 오늘 오전에 한 [가면라이더 OOO(오즈)] 첫 방송을 보았다. 지난 주에 [가면라이더 더블]이 끝나고 새로 시작한 라이더물이다. [더블]부터 가면라이더는 9월 시작으로 바뀌어서 2010년 라이더라고 해야 할지 2011년 라이더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코바야시 여신님이 각본을 맡으셔서 기대가 굉장히 크다. 첫 방송만 보아서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빼놓지 않고 챙겨볼 것 같다. [더블]의 48, 49(마지막)편은 아직 보지 않았다. 원기충전이 필요할 때를 위해 아껴 두었다. 대신에 코바야시 여신님의 수퍼전대, [미래전대 타임렌쟈]를 틈틈히 다시 보고 있다. 코바아시 여신님은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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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기간이 되자 식생활이 피폐해져 집에 먹거리가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삼계탕과 월남쌈을 해서 아버지 편으로 보내 주셨다. 그 덕분에 저녁에 잘 먹고, 야참 비스무레하게 또 먹고 기운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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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마땅한 끼니가 없어 버버리찰떡으로 연명하기를 며칠, 드디어 한계에 도달해 어머니께 SOS를 쳤다. 그 덕분에 점심으로는 애호박전과 치킨샐러드를 먹을 수 있었다. 딸기도 먹고 정신없이 잤다.

저녁에는 아우님과 산울림소극장 1층 수카라에서 샐러드와 오믈렛을 먹고, 사이 강좌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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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집에 오셔서 맛있는 오무라이스를 해 주셨다. 그 덕분에 점심과 저녁을 제대로 먹었더니 한결 힘이 났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미역국도, "너에겐 요오드와 칼륨이 필요해!"라는 말씀을 듣고 음, 그렇군, 하고 생각해서 열심히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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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8일 월요일

일상 2010.03.09 23:25 |
아침에 '아파서' 깼다. 너무 괴로워서 오전에 병원에 다녀왔다. 오후에 학교에 갔다. 6시간 연강인 날이었으나 결국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국제인권법 시간에 귀가했다. 어머니가 집에 와서 이런저런 먹거리를 만들어 주셔서 배불리 먹었다. 기운이 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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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동기 현민의 선고공판일이었다. 서부지방법원에서 오전 10시. 밤낮이 조금 바뀐 상태라 전날 새벽 4시 즈음에야 잠들어서 못 일어날까봐 걱정했는데, 날이 날이니만큼 긴장해서 잘 일어났다. 법원에 제일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으니, 동기 신행과 도호, 이어서 후원회 일을 맡고 있는 후배들이 들어왔다. 좀 더 앉아서 기다리자 [전쟁 없는 세상]의 여옥 님, 다음주에 선고를 받는 다른 병역거부자 분 등이 오셨다. 현민은 기다리는 쪽이 초조해질 때 쯤 되어 나타났다. 현민의 어머니는 오시지 않았다.

공판장 앞에서 현민은 휴대폰을 넘기며 해지를 부탁하고, 속옷과 책 몇 권이 들었다는 종이가방을 들었다.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후배 중희가 지갑에 얼마 있는지 묻더니 혹시 모르니까, 하고 칠만원을 건넸다. 가볍게 포옹하며 인사를 했다. 나는 남자 동기라 손 한번 잡아본 적 없던 현민을 안고, 나도 모르게 등을 두드렸다.

법정에 들어갔다. 형사이다 보니 앞의 분들은 사기죄, 폭력죄.....병역법 위반으로 현민의 이름이 불렸고, 판사는 '주장하는 내용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현행 헌법상 국방의 의무가 주장되는 양심의 자유에 우선하므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그런데 법정구속이 되리라고 생각하고 바로 감옥에 갈 준비를 다 하고 있었는데, 신변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테니 오늘은 귀가해도 좋고 7일 후에 출두하란다. 우리는 우르르 들어갔다가 우르르 나와, 손을 벌벌 떨며 벤치에 주저앉은 현민을 둘러싸고 망연히 서 있었다.

현민은 아무 것도 먹을 생각이 없다며 일단 돌아가자고 했다. 법원 앞에 서서, 아침에 어머니가 갈비며 한라봉을 차려 준 이야기, 끝내지 못한 번역일정을 조정해 놓았는데 시간이 더 생겨서 감옥 간 척 잠수해 있어야겠다는 얘기, 감옥에 가져가려고 골라 놓은 책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아침 일찍 택시를 타고 교보문고까지 갔다가 막상 가고 보니 재판에 늦을 것 같아서 다시 돌아온 얘기를 조금 두서없이 늘어놓으며 추운데 세워 놓아서 미안하지만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언제 또 있겠냐고 했다. 두 번 없길 진심으로 바랐다. 신념을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은 한 번이면 족하다.

서부지법까지 온 김에 바로 옆 서부지검에 있는 CW양에게 잠시 들렀다. CW양은 법정구속이 안 되었다는 얘길 듣더니 판사가 예외적으로 무척 배려해 준 것이리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양보할 수 없는 신념의 무게가 실감나 마음이 무척 무거웠다. 오랜만에 친정에 들르기로 했던 터라 집 근처 전철역에서 어머니와 만나 간단히 쇼핑을 했다. 딸에게 좋은 밥 챙겨주겠다고 분주히 만두를 빚던 어머니는, 현민의 이야기를 듣더니 거실 쇼파에 늘어져 있는 내 쪽을 보며 "어휴, 부모한테 어쩜 그런 불효를 하니. 하여튼 부모 마음보다 지들 신념이 중하다고......먹물이 너무들 들었어. 모르고 좀 편하게 살면 좋을텐데 알아서 그 고생을 하지."라며 한숨을 쉬셨다. 나는 어머니의 시선을 과장스레 외면하며 "그러게~말이에요~"하고 능청맞게 웃었다.

맛있는 만두국을 먹고 어머니와 수다를 잠시 떤 다음 동생의 침대에서 한숨 잤다. 생일 선물로 받은 가방에 생일 선물로 받은 옷, 모자, 내가 잠든 새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따뜻한 귀리빵 샌드위치를 두 개 받아 넣고 학교에 갔다.

집에 와서는 홍차를 우려 샌드위치를 먹었다. 두 개 다 먹었더니 무척 배가 불렀다. 나는 내 삶을 지배하는 포만감에 대해 생각하는 대신, 누워서 배를 두드리며 남편의 귀가를 기다렸다.



-----

B군이 평생 친구로 여기고 있는 도호에게 전화 이야기를 했다.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상담하고 싶었는데 도호가 지난 토요일에 사법시험 1차를 쳤던 터라, 직접 만날 수 있는 오늘까지 기다렸었다. 몹시 걱정하며 주말에 바로 KTX를 타고 내려가야겠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공판장 앞에서 전화 연결이 된 B군은 멀쩡한 목소리로 나한테 전화한 적도 없다고 했단다. 내가 B군의 이야기를 하자마자, B군 일을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도호가 바짝 긴장하며 휴대폰을 꺼내들어 무척 불안했었는데, 차라리 기억하지 못할 만큼 취했었다면 되려 (아주 조금이지만) 안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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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 기간이다. 순식간에 피폐해지고 있는 나를 구원하러 어머니가 와 주신 덕분에 저녁으로는 맛있는 카레를 먹었다. 집에 월남쌈하고 파인애플도 생겼다!

서너 달 째 집 밖에서는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살고 있는데(하루 종일 누구와 무슨 말도 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 덕분에 일기를 다시 쓸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더러 말이 너무 많다고 하셔서 조금 당혹스러웠지만, 그것도 이제는 뭐, 그런 관계구나, 싶다.

저녁에 설잠을 들었다가 억지로 깼다.

아참, 낮에는 아이폰에 신이 나서 아버님께 일본어로 문자를 보냈는데 두 통 쓰고 나서야 아버님 폰은 2G이니 제대로 나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났다. 귀가해서 마침 오신 어머니 폰으로 테스트 문자를 보내 봤더니 역시나, 한자가 깨져 나온다. 얘가 뭔 소린가 하셨겠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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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동기 현민이 홍대 앞 [숲의 큐브릭]에서 병역거부선언 갈라쇼를 하는 날이었다. 어머니가 중앙도서관 전시에 오셔서 수업 후에 어머니와 도서관에서 만나 잠깐 수다를 떨고, 도서관에서 교정지를 보다가 시간에 맞추어 홍대 앞으로 갔다.

동기들 중에는 신행, 찬수, 도호, 은영이 왔고 02학번 이하 한길반 후배들도 왔다. 사람이 많지 않을까봐 걱정했는데 지하 1층인 행사장이 꽉 찼다. 로스쿨에서는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일했던 현지 언니가 내가 올린 글을 보고 일부러 찾아 와 주어서 (내 행사는 아니지만) 무척 고마웠다. 이런 행사는 일단 머릿수가 좀 모여야 앞으로 있을 일들을 웃으면서 준비할 기(氣)가 모이는 법이라.

현민이 쓴 병역거부 소견서는 A4 아홉 장 반에 달했다. 현민은 그 글을 끝까지 읽었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현민은 운동의 성역화를 경계했지만, 대체복무제도라는 해답이 명백히 존재하는데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자신의 삶을 걸고 뛰어드는 용기를 나는 역시 존경한다. 우리는 단지 같은 해에 같은 학과에 입학했을 뿐, 나는 현민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적도 현민의 고민을 눈치챈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를 자랑스럽다고 여기는 내가 조금 부끄러웠다.

현민의 변 중에 특히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권력의 피해자로 자신을 인식하는 데 힘이 들었다"는 언급이었다.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은 나는, 대개의 대학생과 지식인이 그러하듯이, 소위 민중 내지 사회적 약자의 삶과 자신의 삶을 쉽게 동일시하거나 투사하면서 필요에 따라 적절히 거리를 조절할 수 있는 권력과 힘이 있었다. 물론 여기에도 나름의 진정성과 공감의 순간이 아주 없진 않았다. 하지만 병역거부는 내게 위와 같은 행위와는 별개로 실제 그러한 삶으로 진입하는 일이 어떤 체험인지를 생생히 알게끔 했다."

현민은 진정성과 공감에 대해 읽다 말고 고개를 들고, "그게 다 사기였다, 이건 아니란 거죠. 하지만." 하고 말을 붙였다. 저항자일 수는 있지만 피해자는 아닌 삶을 살아온 '우리'의 등 뒤에 늘 남아 있는 물러설 수 있는 공간. 공감할 수 있는 동시에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들이 갖는 진정성과 그 한계. 나의 진심을 믿으면서도, 그 확신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에 덤비면서도 나의 한계가 위선은 아닌지 자문해야 하는 순간들. 다가갔다고 생각했다가 '나'와 '대상'을 가르는 심연을 거듭 깨달을 때의 자괴감. 그 바로 몇 시간 전에 어머니는 내가 전시에 붙인 쪽글을 보고 "이 글 어쩐지 부르주아 적인 데가 있어. 네가 그런 면을 일부러 보이고 싶어한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함께 총을 내리자는 노래를 부르고, 동기끼리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석사 논문이 든 노트북을 도난당한 신행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근처에 산다는 여동생을 보러 갔다. 아직 신혼인 찬수는 여기에 정장을 입은 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다며 씁쓸히 웃었다. 은영은 "나 이러다가 (감옥가기 싫어서) 내일 입대할지도 몰라"라고 엄살을 부리는 현민에게 진지한 얼굴로 "괜찮아. 그래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해."라고 말했다. 나오는 길에는 '현민의 병역거부선언'이라고 쓰인 수건을 받았다.

나는 귀가길에 한양문고에 들러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 신간을 샀다. 거의 다 읽었을 때쯤 집에 도착했다. 남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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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aptj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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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우성 2010.02.19 07:0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신행이는 여동생이 없어요 ^^

    그리고 왜 동기에 대한 자세한 멘션에 내 이야기만 쏙 빼놓은거야! 추가해주셈 ^^

    • CaptJay 2010.02.19 09:55 신고 Address Modify/Delete

      헐 나 대체 왜 친여동생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내가 자매를 둬서 그런가...~_~ 지적 고마워. 남동생인가? 낼 신행한테 누구 보러 갔었는지 물어봐야겠다! 내일(토)의 현민송별회+노들야학일일호프 가? 난 골골골 하고 있지만 가능하면 얼굴이라도 비추려고.

      글구 너만 없는 건.....나랑 안 놀아줘서 ?!?! ㅋㅋㅋㅋ 너 멋있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커헉) 그렇게 쓰면 글에 너무 생뚱맞잖아. ㅋㅋㅋ 정우성님도 무지 반가워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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