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나와도 꽤 오래 수업을 함께 했던 W씨의 남편 분이 돌아가셨다. 사실 지난주에 위독하다는 소식은 들었었다. 장례식장을 다녀오신 대표님으로부터 W씨의 지금 상황을 듣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내 생각을 말씀드렸다.  


저녁에는 일요일에 먹고 남은 만두를 더해, 동진님표 어묵탕에 맥주를 한 잔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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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후배들, 이대 로스쿨 리걸클리닉 분들과 학교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다. 신기한 느낌이었다. 구상한 일이 잘 되면 좋겠다. 서로 배우고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CERD 준비 시작. 밤에 회의 끝나고 맥주를 한 잔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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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을 앞둔 히엔과 서래마을에서 만났다. 바로 옆 학교 다닐 때는 보자보자 말만 하고 못 보다가, 이렇게 히엔이 한국을 떠날 때가 다 되어서야 간신히 본다. [Volare]라는 이탈리안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샐러드는 평범했지만 피자가 아주 맛있었고, 파스타도 괜찮았다.

히엔은 하노이가 아니라 남부로 가서, 여성 직업 교육에 관한 일을 맡는다고 한다. 또 만날 일이 있을 것 같다. 아참, 내 베트남어 선생님이 히엔의 한국어 선생님(한국어과)이라고 해서 재미있었다. 혹시 아는 사이이지 않을까 싶어 말을 꺼내 보았는데, 사제지간이었었다니. 준비중인 기획에 대해 말하고 도움을 부탁했는데, 선뜻 거들어 주겠다고 하여 고마웠다. 베트남 인스턴트 쌀국수(?)를 선물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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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센터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 대표님과 차를 마시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다. 지금까지 수업을 했던 학생 분들의 안부를 여쭙고,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거나 더 나빠진 상황을 들었다. 이제 나는 한국어 교사가 아니라 다른 역할을 하게 되리라. 선생님이라고 불리었지만 언제나 내가 더 많이 배웠다. 

저를 많이 이용하시라 몇 번이나 당부하고 센터를 나섰다. 이미 해가 한참 기울어 있었다.배움에 어디 끝이 있겠냐마는, '배우는 중'이라는 변명에는 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끝에 가까운 자리에 서서, 다른 이들이 자신의 삶으로 가르쳐 준 것들에 책임을 지자고, 이 만남들에 책임을 지자고, 현실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며 생각했다. 삼월인데도 바람이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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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센터 수업을 하고 서둘러 귀가, 어제 동진님이 홍대 앞에서 사다 준 떡볶이를 먹고 이 토론회에 갔다. 토론회는 유익했다.

 몇 주 전부터 일을 구하러 다니고 있다는 일기를 계속 써 오던 S씨가 취직했다며 한국어 공부를 그만두었다. 시간이 나면 다시 오겠지만, 경제력이 별로 없는 장애인 남편이 얼마전에 큰 수술을 했기 때문에 어떨지......3주 전에 센터에 온 베트남인 U씨의 시아버지가 오늘 아침에 며느리와 함께 와서 며느리 한국어 공부 시켜줘서 감사하다고 감사하다고 대표님께 인사를 하고 가셨다. U씨는 두 달 정도 전에 - 이제 세 달? - 한국에 왔다. 그동안 집 안에만 있다가 우리 센터에 와서 이제 한글을 뗐다. 집에서 나가지 못한 이유는 말을 못 하니까. 외국에서 데려온 새파랗게 어리고 예쁜 며느리가 나가서 길 잃어버리거나 험한 일(인신매매 등) 당할까 무섭고, 그렇다고 종일 한 집에 말 안 통하고 살림 못 하는 어린 여자애와 있자니 답답하기도 답답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시아버지가 며느리 손을 잡고 센터를 찾아온 케이스다.

임신 6개월에 들어선 J씨 배가 꽤 나왔다. 아기가 생겼다고 정말 좋아한다. 백일 지난 JA씨 아기는 이제 뭐든지 입에 집어넣으며 수업하는 커다란 책상 한가운데에서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정말 큰 명절이라, 9월 1일부터 ber가 들어가는 달 내내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라디오나 방송에서 크리스마스 노래를 틀며 크리스마스 시즌을 즐긴다고 한다. 1월 첫째주에 끝난다고. 크리스마스 날에는 어린 아이들이 악기를 들고 집집마다 찾아가 노래를 부르고 용돈을 받는단다. JA씨는 어렸을 때 동네 엄청 큰 부자집에 친구들과 가서 용돈 달라고 노래를 불렀는데, 집주인이 가짜돈을 준 적이 있단다. -_-; 그리고 필리핀에서는 공이 없으면 깡통으로 피구를 한단다.

내일 환경법 기말고사라 이제 공부하러. 남편에 대한 절대적 우선권을 확보하지 못하는 결혼관계에 대해 주기적으로 짜증이 폭발한다. 좋은 사람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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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에 내내 몸이 좋지 않았다. 다음 주부터 시험기간이고, 11월에 거의 매주 발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앓아눕게 될까봐 신경을 많이 썼다.

센터에서는 간이귀화 자격이 되는 A씨가 F2비자를 연장하러 출입국관리소에 다녀온 얘기를 써 왔다. A씨는 남편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긴 해도 비교적 관계가 원만하고, 남편에게 직장도 있다. 그래서 수업 후에 대표님께 뭔가 사정이 있는지 살짝 여쭈어 보았더니, 현재 한국에서는 한국인 자녀가 없는 이주여성에게는 실무상 국적을 잘 주지 않는다고 한다. 쫓겨나지 않으려면 애를 낳으란 말이다. 영주권이라도 받으면 좋겠지만 많은 남편들이 영주권 발급에 협조하지 않고 귀찮아한다. 물론 저소득층에서 결혼이주가 많다 보니 재정증명 문제가 걸리는 경우도 있다.

아이가 조금 자라고 한국어도 늘어 여유가 생긴 S씨는 요즈음 텔레비전에서 듣거나 주위에서 본 단어들을 사전에서 찾아 하고 싶은 말을 한국어 문장으로 열심히 만들어 와서 시간이 날 때마다 대표님께 많이 여쭈어 본다. 모어-한국어 사전이 부실하고 S씨가 아는 어휘만 사용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하니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번에는 '긴박하다'는 단어를 찾아 왔는데 '급하다'와 '긴박하다'의 뉘앙스 차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옆에서 보며 참 난감했다. 그런데 대표님이 제시하신 설명.

"남편이 화 났어요. 욕해요. 소리 쳐요. 이거 긴박하지 않아요. 남편이 화 너무 났어요. 칼로 찌르려고 해요. 이거 긴박해요."

그래, 바로 그런 상황이 '긴박'하지. 다른 풀이에 '급하다'와의 차이를 모르겠다며 아리송해하던 S씨가 대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와서는 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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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지나고 센터에 가 보니 초급 학생분들의 한국어 실력이 크게 늘어 있었다. "아이고 내가 속 터져, 속 터져", "어유, 답답해.", "설거지 빨리 빨리 해.", "아무 날도 아니고 추석인데 왜 이러니?" 등 수준 높은 생활 한국어를 몸동작(예) 가슴을 두드린다, 손가락질 한다)까지 곁들여 완벽하게 익혀 오셨더라. 초급반이라 한글을 읽고 말하기는 어느 정도 되지만 억양(intonation) 자체는 아직 모어 억양들인데, 추석에 배운 말에 한해서는 어쩜 그렇게 사투리나 서울말 억양까지 완벽한지, 그저 웃지요.



귀가해서는 샌드위치를 대충 만들어 먹은 다음, 밤잠 자듯 푹 잤다. 요즈음 동진님 회사일이 너무 바쁘고 힘들어 속상하다. 밤에는 샤느님이 나오신 [Yes Boss]를 보았다. 경쾌하고 재미있는 영화였고, 젊은 시절 샤룩칸의 매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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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센터 수업은 잘 진행되었지만, 조금 어려웠다. 캄보디아인 S씨가 수업에 합류했다. 역시 수업에 오기로 한 캄보디아 출신 SJ씨(N씨)가 아이 때문에 오지 못했기 때문에, 학생 중에 영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S씨 뿐이었다.

매개어가 있으면 수업을 진행하기가 훨씬 쉽다. 특히 초급 단계에서는 텍스트에 비해 그 텍스트를 이해했는지 판단하기 위한 문제가 어렵기 때문에 문제를 매개어나 모어로 바로 이해시킬 수 있으면 시간 활용 면에서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요즘 우리는 '떼굴떼굴 굴렀어요', '깔깔깔 웃었어요', '기운이 쏙 빠졌어요' 같은 흉내 내는 말로 이루어진 간단한 동화를 배우고 있다. 흉내 내는 말은 중요하지만, 교사의 흉내로 쓰임을 바로 알 수 있으니 어려운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내용을 잘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풀어야 하는 문제는 '이 글에서 호랑이와 두꺼비의 말과 행동을 보고 생각한 것을 토론해 봅시다'라는 한자어와 추상어와 지칭의 물결.......

그래서 필리핀 분들만 오셨던 지난 주에는 문제를 읽고, 영어로 각 단어의 뜻을 말한 다음 전체 문장을 영역해서 다시 읽어 주었다. 그러나 이번주에는 문제를 모두 한국어로 풀어 설명해야 했다. 지금까지 늘 한국어만 사용해 수업했으면서, 몇 주 사이에 영어를 쓰는 데 익숙해져버려 영어가 먼저 나오더라. 영어로 처음에 설명을 하더라도 어차피 한국어로도 다시 풀어 말하기 때문에 학생이 이해하지 못할 일은 없다. 모두가 이해하고 말로 답할 수 있을 때까지 천천히 계속 반복하는 수업이다. 또한 영어 설명을 이해한 필리핀 분들이 대답을 하면, 그 대답을 듣고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 학생도 묻는 바를 더 잘 알 수 있다.

그래도 단 한 명이라도 모르는 언어라면 매개어로 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S씨가 느낄지도 모르는 소외감 때문이다. 혼자만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대단히 난감한 일이고, 보통 그 사람만 문화적 배경이 다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독일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우리 반을 맡은 두 선생님 중 한 분은 독일어만 사용하셨고 다른 분은 스페인어도 쓰셨다. 당시 우리 반에 스페인어를 못 하는 사람이 나 하나 뿐이었다. 스페인어를 잘 하는 선생님은 독일어로 풀어 설명하려니 오래 걸리는 중요하지 않은 말이 나오면 스페인어로 뜻을 말하고 바로 넘어가곤 했다. 그 사이에 나도 내 독영사전을 찾아 보면 되고, 혹시 놓치면 옆 사람에게 영어로 물어보면 그만이다. 대체로 아주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십여명 중에 나 혼자 교사의 말을 못 알아듣는 상황은 꽤 힘들었다. 그렇잖아도 나 혼자 동양인이었는데.

이번 주부터 S씨가 합류한단 얘기를 듣고 그 때 생각을 하며 나는 꼭 한국어만 써야지 했는데, 수업 끝내고 나니 학생 중에 한 명만 모르는 매개어를 배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겠더라. S씨는 작년 여름부터 나와 수학과 음악 수업을 같이 했고, 함께 여행도 다녀온 사이라 소외감 부담이 좀 덜한데도 마음이 많이 쓰였다. S씨가 필리핀 분들보다 한국어를 조금 더 잘 하신 덕분에 무난하게 진행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겪어 봐야 아는 얘기를 꺼낸 김에 이주민의 한국식 이름 개명에 관해 쓰려고 했으나 - 캄보디아 출신 N씨가 최근에 국적취득하면서 개명도 했다 - 다음 주로 미룬다. 

나머지 시간에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샤룩 칸 뮤직비디오(영화 장면들)를 보았다. 98년 작 청춘드라마 [Kuch Kuch Kota Hai(कुछ कुछ होता है , Karan Johar 감독,1998)]도 보았다. 실로 대단한 해피엔딩이었다.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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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aptj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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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한 한국인은 대략 15,000 ~ 20,000 단어를 이해하고, 그 중에 1/3 정도를 자신의 발화에 사용할 수 있다. 전자를 이해어휘, 후자를 사용어휘라고 한다. 신약성경은 4,800여 단어로 이루어져 있고 셰익스피어는 21,000 단어 정도를 사용했다. 조사된 작가 중 가장 어휘량이 풍부했던 빅토르 위고는 60,000 단어를 '사용' 했다.

빈곤, 노동, 이주 같은 소수자 주제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면, "그래, 뭔가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알겠어. 하지만 왜 좀 다른 방식으로 말하지 않는거야?" 라는 질문이 나온다. 더 설득력 있게, 더 논리정연하고 엄밀하게, 더 온건하게 말해 주길 바란다. 그러나 때로는 호의에 기반한("난 정말 이 문제를 이해하고 싶어.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말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을 거야.") 이러한 요구가 간과하는 것은, 어휘량과 어휘를 다루는 방식 역시 학습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평등하지 않다.

교육기회에 계급격차가 생길수록 소수자가 말로 (더 나은 교육을 받은) 다수를 설득하기는 어려워진다. 자신이 가진 가장 근본적이고 때로는 유일한 수단인 몸으로 뜻을 표현하려고 시도하게 된다. 달리 말하면 시끄럽게 데모질을 하거나 진지한 문제 앞에서 춤 추고 노래나 부른다.

요전에 TOPIK(한국어능력시험) 3급 기출문제 지문에 '아침 식사 합니다'라는 문장이 나왔다. 식당의 광고지였다. 태국에서 온 E씨가 이 지문을 보고 "아침식사, 다른 말 있어요. 지, 조....?"라고 물었다.
"아, 조식이요?"
"네, 조식, 다른 밥도 있어요. 뭐라고 해요?"
나는 '조식, 중식, 석식, 야식'을 쓰고 한자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한국인은 3식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조식, 중식, 석식은 밥이지만 야식을 먹었을 때는 보통 밥을 먹었다고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E씨가 말했다.
"저는 매일 야식 먹어요. 빵집, 새벽 세 시 까지 가야 해서, 새벽 두 시에 밥 먹어요. 야식 안 먹으면 못 버텨요."

E씨는 태국에서 초급대학을 졸업했다. 속아서 결혼한 한국인 남편은 정신지체장애인이다. 한번은 다른 학생 분이 데려온 순한 아기를 귀여워하다가 "우리 집 애는 안 때려도 울어요."라고 한 적이 있다. E씨에게는 아이가 없다. 생계를 위해 새벽에는 빵집에서 청소를, 밤에는 식당에서 설거지를 한다. '~지 않으면 못 버티다'는 E씨 수준의 한국어 학습자가 배워 알 만한 표현이 아니다. 함께 일하는 분들에게서 들어 익혔으리라. 몸으로 그 의미를 이해했을 것이다. 나는 삶이 언어가 되고, 언어가 끼니가 되고, 끼니가 계급이 되어 다시 말로 표현되는 이 날것 그대로인 현실 앞에서 아연해졌다.

내가 지금 일하는 센터의 문을 처음 두드렸을 때, 대표님은 '배운 사람만 가르쳐 본' 내게 수업을 맡기기를 망설이셨다. 나를 받아들인 것은 내가 - 거창하게도 - 작가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이 분들이 자기 이야기를 말로 할 수 있는 만큼 쓸 수 있게 되어 다른 한국인들에게 보일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 수준까지 한국어를 배울 만한 여유가 있는 학생은 거의 없어요. 하지만 노력해 보고, 정 선생님이 글을 쓰신다고 하니까, 혹시 언젠가 이 분들의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다면......

나는 저 말줄임표만큼의 정적을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E씨는 아기를 갖고 싶어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도 E씨가 한국어로 자신의 삶을 태국어로 하듯이 표현할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E씨가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날도 오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그릇을 날라 씻거나 바닥을 닦거나 쓰레기통을 비울 E씨가 아플 때 병원에 가서 증상을 정확히 설명하고 의사의 설명을 다 알아 들어 건강하게 나이들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새벽 두 시 반.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누워서 아이폰을 갖고 놀다가, 지금쯤 서둘러 야식을 먹고 빵집으로 가고 있을 E씨를 떠올리고, 내가 때로는 주먹처럼 휘두르고 있는 이 모든 말, 말들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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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뗏목지기™ 2010.05.12 09:3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뭔가 가슴이 먹먹해지는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공강 시간에 보라님과 만났다. 이대 후문 쪽으로 갔다. 내가 길을 잘못 들어 정장구두를 신은 보라님이 한참을 둘러 가느라 고생하셨다. 바로 어제 왕복했던 길이라 자신이 있었는데 우쭐했다가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20세기에 학교를 떠나 21세기에 돌아온 보라님의 인도를 받아 간신히 LORD Sandwich라는 맛있는 샌드위치/피자 카페에 들어갈 수 있었다.

거의 백인들만 전공하는 폴란드, 러시아 문학을 오랫동안 해외에서 공부하신 보라님의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미국에서 조교 시절을 포함해 10년 동안 강의를 했는데, 그 10년 내내 유색인종인 학생이 단 두 명 밖에 없었단다. 그나마도 한 명은 도중에 그만두어서, 결국 한 수업을 끝까지 함께한 사람은 한 명 뿐이었다. 요전에 보미가 집에 놀러 왔을 때, 맡고 있는 학부생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 과(사회복지)는 흑인이나 아시아계가 많다고 했던 것과 비교되었다. 또 폴란드에 있을 때는 10개월 동안 수도 없이 전차를 탔는데 언제나 전차에 동양인이 보라님 한 명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같은 칸에 베트남 아주머니가 탄 것을 처음으로 보았는데, 그 때, 나는 일단 유학중이고 돌아갈 집이 있지만 저 분은 평생 이렇게 이방인으로 이 사회에서 살아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단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폴란드에는 베트남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 길고 오랜 이방인으로서의 경험이란 어떤 것일까?

그 외에도 - 여기에서 전공 관련 서적을 구입하기가 너무 힘들어 책을 사러 블라디보스토크에 갈까 생각중인데, 한국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배로 9시간이 걸리고 비용은 1등석은 80만원 정도, 2등석은 4,50만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예상보다 시간이 적게 걸리고 비용도 저렴해서 놀랐다. 다만 러시아는 봄에 대체로 치안이 좋지 않은데, 4월 20일 히틀러 생일 때문이란다. 스킨헤드의 경우 외국인 혐오 범죄를 저지르기는 해도 나름대로 내부 규율 같은 것이 있어서 그 행동 패턴을 알면 어느 정도 대비가 가능하지만(예를 들어 모이는 장소가 있고, 여자보다 남자 유색인종을 공격한다고 한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훌리건들의 범죄는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무척 위험하다고 한다. 또 폴란드는 남한보다 북한과 오랫동안 친밀하게 수교해 왔기 때문에, 양측 대사관이 모두 있는 바르샤바에서는 괜찮지만 보라님이 계셨던 도시처럼 북한은 대사관이 있고 남한은 문화관(?) 같은 것만 있는 곳에서 교통사고가 나거나 하면, 남한 사람의 신병을 북한 대사관으로 잘못 인도하는 경우가 생긴다. 여권을 갖고 있어도 영문 국명까지 비슷하기 때문에 의식이 있어서 남쪽 사람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경우 실종되기도 한다니 (북측에서는 일단 남한 사람이 손에 들어오면 절대로 놓아주지 않으려고 한단다) 무서운 현실이다. SF 팬으로 유명한 주한체코대사님의 이야기에는 구체제에 대한 보헤미안적 로망이 듬뿍 담겨 있어서, 다음에 꼭 대사님을 직접 만나서 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출판사나 편집자, 이주, 수업 등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세 시 반 쯤 헤어졌다. 나는 국제법과 국제인권법 수업을 듣고 집에 왔다. 보라님 덕분에 알찬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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